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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산책 ㅣ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9년 12월
평점 :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를 이 작품 말미에서 한 줄로 요약하고 있다. '피비린내나고 생생하며 음침한 것으로 채색'. 이 문장을 봤을 때 기존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가 모두 이런 분위기였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는 기본 특징이 있다. 우선 살인이 한 가문에서 일어난다. 그 가문은 지방의 부유한 가문이거나 섬에서 권위가 높은 가문이다. 시대가 패전 전후이기 때문에 그 시대의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다. 작품들을 보면 마치 일본 전통 가옥의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무표정한 하녀가 기모노를 입고 등장하거나 늙은 주인과 젊은 부인이 나타날 것만 같이 생각되게 전체적으로 일본의 그 시대를 잘 반영하면서도 탐정소설의 기본에 충실한 일본 추리소설사에 한 획을 긋는 작가의 시리즈임이 분명함을 전해준다.
후루가미 가문의 실질적 지배자가 된 아버지를 둔 나오키와 친구인 야시로라는 삼류 탐정소설가가 자신이 목격한 살인 사건을 1인칭 시점에서 적는 방식으로 시작되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일곱번째 작품인 <밤 산책>은 기묘한 어린 시절의 점쟁이 말에 현혹되어 꼽추인 오빠 모리에의 사랑을 받게 된 야치요가 또 다른 꼽추 화가 하치야를 집에 초대하고 거기에 야치요를 사랑하고 있던 또 다른 오빠 나오키 사이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사랑과 갈등, 탐욕과 증오가 목 없는 시체를 만들어내는 사건까지 일어나게 만들면서 사건은 점점 음침해진다. 두 명의 꼽추, 목 없는 시체, 그리고 사라진 또 다른 꼽추. 눈 앞의 꼽추는 모리에인가, 아니면 하치야인가. 그들은 하치야로 결론을 내리지만 범인으로 지목된 모리야를 찾을 길이 없고 이때 몽유병 증세가 있는 야치요가 집을 나가면서 또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 가운데 아주 심플한 작품이다. 장황하게 가문에 얽힌 이야기를 늘어 놓지도 않고 살인 사건이 너무 많이 과도하게 등장하지도 않는다. 대신 으스스한 분위기와 추리를 할 수 있게 만드는 많은 단서를 배치해두고 양파처럼 비밀이 하나 드러나면 또 다른 비밀이 드러나는 식으로 인간 군상들의 저마다 감춰둔 비밀을 차근차근 풀어가며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고 그러면서 느긋하게 2부에 긴다이치 코스케를 등장시켜 사건을 마무리짓는다. 물론 긴다이치 코스케가 등장하도 사건은 또 일어난다. 긴다이치 코스케는 사건은 해결할 수 있지만 사건을 막는 능력은 없는, 하지만 그가 가는 곳에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 탐정다운 탐정일뿐이니까 말이다. 요코미조 세이시 팬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많은 작품이라고 하는데 왜 드라마와 영화로 더 많이 만들어지지 않았는지 의아하기만 하다. 훨씬 영화로 만들어 기묘하고 음침한 분위기를 생생하게 시각적으로 전달하면 더 좋을텐데 아쉽다.
긴다이치 코스케가 처음부터 등장하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한 시대를 자세히 지속적으로 묘사한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잘못하면 식상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는 한 시대를, 하나의 가문을 통해 조명하면서 거기에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담아냈다. 탐정소설이고 본격 소설이지만 한 가문의 흥망성쇠와 그 가문 사람들간의 인간적 갈등, 인간적 고뇌와 감추고 싶은 사연 등을 통팔력을 가지고 표현하고 있다. 그에게는 인간, 그 인간이 모인 한 가문, 그런 가문들과 그 안의 사람들이 모여 만든 사회와 국가가 모두 미스터리의 소재인 것이다. 이런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때문에 반세기가 넘게 지난 오늘날까지 국경을 초월해서 미스터리팬들에게 사랑받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요코미조 세이시, 존경스런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