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속에 흐르는 피 블랙 캣(Black Cat) 21
프랜시스 파이필드 지음, 김수진 옮김 / 영림카디널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한 여자가 호텔에서 뛰어 내리는 장면을 우연히 찍히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였던 악명 높은 범죄자만을 변호해서 무죄로 풀어주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냉열한 변호사가 마지막 변호를 맡았던 릭 보이드의 사건이 종결된 직후 자살을 한다. 왜 메리언 시어러는 자살한 것일까? 모두의 궁금증과 사건은 그녀의 뒤를 따르게 된다. 

살면서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점이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변호하는 일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그거 하나뿐이랴마는 증거가 분명하고 피해자의 진술이 확실하고 무엇보다 어떻게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었는지가 더욱 놀라울 뿐인데 범죄자에게도 변호받을 권리가 있고, 범죄자도 인권이 있고, 법이 유죄를 판결하지 않는 한 무죄라는 논리에 입각해 그들을 변호하는 변호사들의 모습이 모두 이 작품 속 메리언 시어러같지는 않겠지만 만에 하나 메리언 시어러같은 자신의 성공과 사디스트적인 피해자를 공격하는데서 희열을 느껴 범죄자를 변호하는 변호사가 있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가해자보다 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피해자라니 법의 존재에 회의감마저 든다. 

메리언 시어러의 죽음 뒤 그녀의 유언을 집행하는 사무 변호사인 그녀의 친구 토머스는 그녀가 숨긴 재산을 찾기 위해 애를 쓴다. 그녀의 하나뿐인 혈육인 남동생 프랭크는 누나의 모든 것을 상속받기 위해 꿈에 부풀어 있고 그녀가 마지막으로 변호했던 릭 보이드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그에 관한 불리한 증거를 찾기 위해 토머스를 찾아 감언이설로 다시 그를 회유하려 든다. 여기에 토머스의 메리언에 대한 조사 의뢰를 받은 피터는 릭 보이드 사건때 검사측 변호사로 있었던 만큼 그 사건의 희생자 언니인 헨리에타에게 죄책감과 함께 묘한 감정을 갖게 된다. 

작품은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메리언이 숨겨둔 것들을 찾기 위해 각자 나름의 방식을 동원하는 동안 메리언이 법정에서 얼마나 잔인한 변호사였는지를 법정 장면을 간간히 섞어서 보여주며 마지막에 그녀가 왜 자살해야만 했는지까지 그런 법정 형식을 취하고 있다. 또 한가지는 헨리에타의 직업인 클래식 의복을 드라이 크리닝하는 것과 메리언에게 애인이 있었고 메리언이 클래식 복장을 입고 춤을 추거나 클래식 의복을 멋으로 입는 취미가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며 두 사람의 연결고리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메리언의 클래식 복장에 대한 고상한 취미는 그녀의 콤플렉스에 대한 보상 심리로 보여진다. 이것은 나약한 여성에 대한 공격성과 무관하지 않은 자기 과시 심리다. 하지만  헨리에타의 직업적이면서 순수하게 좋아하는 관심은 한 여성의 강한 의지에 대한 표현이다. 아무도 좋아하지 않고 힘들고 무시하는 일이지만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므로 행복을 느끼는 헨리에타를 통해 현대 여성과 현대인이 가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만 같다.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점을 통해 메리언과 헨리에타를 비교하게 작가는 만들고 있다. 

처음 메리언의 법정에서의 행동에 분노하고 피해자의 어리숙함과 이용당하는 것에 화가 나지만 읽어나가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잘 표현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헨리에타의 부모에 대한 반응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기도 했다. 그것이 마지막까지 작품을 읽게 만드는 호기심을 유발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된다. 또한 살면서 잔인한 행동만을 한 메리언이 죽으면서까지 사람들을 괴롭게 만든 점이 놀라웠다. 자신이 해결하고 죽을 수 있었을텐데 남에게 맡기다니 끝까지 변하지 않는 본성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이런 요소요소에 적절한 문제를 배치해서 긴장감과 드라마틱한 조마조마함을 전달하고 있다.  

작가는 단순 명쾌하게 인물들의 성격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단 몇줄만 읽어도 캐릭터가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게 쓰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부분에서는 조금 더 복잡했더라면 하는 마음도 든다. 하지만 그 어떤 잔인한 장면보다 더 잔인한 장면을 법정 장면을 통해 보여주며 릭 보이드의 행보를 통해 스릴을 느끼도록 만들고 있고 다른 작품과 다르게 현대적 폭력과 그로테스크한 면없이 추리소설적 묘미를 만끽할 수 있게 만든 점은 높이 사고 싶다. 반전이라는 장치없이 전통적 추리소설의 영국적인 풍미가 전해 내려온 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영국 여류 추리작가들의 계보를 잇는데 손색이 없는 작가를 만날 수 있어 기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01-23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6 2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