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추억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경찰이 현장 감식을 하면서 작품은 시작된다. 헐리 반장은 시건에 투입된 심리분석관 라일라 스펜서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그녀의 등장은 흥미롭다. 그리고 정직 경찰 매코이가 등장한다. 어딘가에서 잠이 들었다 깬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을 준다. 악랄한 연쇄 살인범 데니스 코헨을 잡다가 머리에 총상을 입고 아직도 심리 상태가 불안정하고 머리 속 총알 때문에 고통받고 있지만 복직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사건에 단순 참관자 정도의 자격이 주어진다. 총도 뱃지도 없지만 그는 받아들인다. 사건이 점차 연쇄 살인 사건이 되어 가면서 데니스 코헨의 사건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는 늘 의심했다. 정말 그가 죽었는가를. 그는 그자가 살아있다고 믿고 그를 잡으러 독자적 행동에 나선다. 여기에 서서히 드러나는 라일라의 또 다른 모습까지 사건들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범인은 찾을 길이 없고 경찰들은 서둘러 사건을 해결하려고 애를 쓰기만 하는데 성과는 없는 날들이 이어진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탐정 포와로가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작품인 <커튼>에서 자신의 손에는 피 한방울 안묻히고 다른 사람의 내면에 숨어 있는 살의를 자극해서 살인을 유도하는 범죄자가 등장한다. 이 작품은 그 작품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의 살인으로 죄책감이 들어 자살을 하거나 살인을 하게 만들고 있다. 연쇄 살인이 다중 살인으로 번지는 것이다.  

작가는 하나의 사건이 이유없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연쇄 살인범도 추악한 범인이지만 피해자를 피해자로 만든 것은 그들 주변의 인물들이 아니냐고. 죽는 것만 못한 삶을 살게 만드는 것에 대해서, 차라리 죽는게 나은 삶도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살인자는 피해자를 웃는 표정을 짓고 죽음을 맞이하게 만들었다. 기괴한 표정.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입은 웃고 있는 그로테스크함. 어쩌면 이것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모습이 아닐까. 도시를 감추고 있는 안개처럼. 

크리스 매코이는 독자적으로 범인을 쫓는다.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찰은 그를 믿지 않는다. 여기에 그를 쫓고 감시하는 이들이 있다.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오로지 라일라 스펜서만이 그를 믿어준다. 그리고 그의 심리 상담을 해야 하는 그가 오히려 그에게 상담받는 결과가 된다. 또한 크로스워드 퍼즐에서 범인이 단서를 남겨 살인을 예고함을 아는 것도 크로스워드 퍼즐을 즐기는 매코이다. 크로스워드 퍼즐은 작품 속에 독자도 풀어보라고 나온다. 예고 살인격인데 그 방법이 괜찮다. 작가가 나름 고심한 면이 엿보이는 소재라고 생각된다.  

작가 이정명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역사적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소재로 팩션을 쓴 작가다. 그의 팩션은 참 좋았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현대 범죄 소설을 들고 왔다. 배경은 뉴아일랜드. 침니랜드의 바닷가에 있던 바위에 만든 인공 섬이다. 사람들은 침니랜드에 사는 못사는 사람들과 뉴아일랜드에 사는 잘사는 사람들로 나뉜 곳이다. 바닷가라 안개가 많이 끼는 도시이기도 하다. 이 안개의 도시에 대한 묘사가 좋다. 주인공의 마음을 안개로 대변한 느낌은 마음에 들었다. 사건과 사건 사이의 인간의 심리와 모든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 그리고 숨겨지고 감춰진 진실을 찾는 것이 이 작품이 주는 매력이다. 안개가 끼었다 걷혔다 하는 것처럼 보일듯 말듯한 느낌을 작가는 잘 표현하고 있다.  

이중 인격이 등장하고 기억상실이 등장하는 미스터리, 도시 개발에 대한 부와 권력 비판, 범죄 피해자에 대한 관심과 그들의 트라우마에 대해 인식, 경찰 조직 자체에 대한 문제점 지적 등 다양하게 사회적 문제와 추리소설로서의 트릭, 스릴있는 반전까지를 담아내기에는 다소 작품이 짧다. 좀 더 길어서 세밀하게 묘사하고 긴장감을 더욱 확실하게 고조시켰더라면 더 좋았을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 작가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