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여름, 기억하고 싶은 악몽
테아 도른 지음, 장혜경 옮김 / 리버스맵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검은 여름은 2주동안 율리아가 겪은 일들을 말한다. 기억하고 싶은 것은 그녀의 심리 상태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악몽은 어떤 말을 하건, 어떤 글을 쓰든 결국 그 모든 것은 악몽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음을 나타낸다. 어떤 진실이 있고 어떤 거짓이 있던 보여지는 것과 감춰진 내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 안에 남아 있는 것은 검은 악몽뿐이다. 그러니 율리아의 말을 모두 난 믿을 수가 없음을 말하고 싶다. 열 아홉살 소녀가 진실을 말한다하더라도 그것이 진정한 진실이라고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책의 시작은 평범하다. 한 소녀가 납치되었다가 2주만에 살아 돌아온다. 언론 매체는 처음에는 그녀의 생환을 기뻐하고 그녀가 겪은 일에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점점 언론이 소녀를 바라보는 시각은 변한다. 왜 잔인한 연쇄 살인마에게서 그녀만이 살아 돌아올 수 있었는지에 의문을 품는다. 그리고 그녀가 스톡홀름 증후군에 빠져 연쇄 살인마를 도운 것은 아닌지, 더 나아가서 공범은 아니었는지의 문제로 그녀를 괴롭힌다.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직접 그 악몽같던 시간들을 더듬어 글을 쓰기로 한 것이다. 

작가는 율리아가 쓰는 글을 통해 그녀가 납치당한 시점부터 왜 탈출할 수 없었으며 그 살인마가 살인을 계속하는데도 막을 수 없었는지를 피해자 입장에서 사건을 재구성해서 보여주고 있다. 글을 읽으며 생각해본다. 대단한 배짱에 죽을 각오를 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사이코패스에게 납치된다면 감히 탈출을 꿈꾸기는 힘들거라고. 또한 아무리 많은 여성이 모인다고 한들 범죄자 한 사람을 당해내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누구든 죽을 각오를 하고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얘기를 한다면 그건 호랑이에게 잡혀가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일뿐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작가는 피해자 율리아에게 독자가 공감하게 만든다. 

그러는 한편 여러 편의 편지를 보여준다. 그 편지를 읽고나면 당황하게 된다. 그건 무엇이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사실은 율리아가 쓴 소설이 아니면 편지, 둘 중 하나일 수도 있고 둘 다 일 수도 있고 둘 다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납치되고 폭행당하고 끌려다니면서 연쇄살인마의 엽기적인 행동을 봐야만 한 열 아홉살 짜리 소녀의 정신 세계가 순식간에 무너져 버려 자신도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기 힘들었을 거라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다 읽은 뒤 난 그렇게 생각했다. 에필로그가 또 다른 면을 이야기해주고 있다고도 생각되는 점은 내 생각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작가는 작품속에서 율리아와 납치범의 심리가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담아내고 있다. 전직 사이클 선수였던 연쇄살인마를 따라 사이클 코스를 찾아다니면서 유럽의 각 나라를 보여주고 있다. 그 하나의 통합된 유럽 연합 속에서 여러 사람들 사이를 다니는 이들의 독특한 모습을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의 모습 또한 하나의 악몽이다. 낯선 이를 너무 쉽게 따라가는 것도 악몽이고 무인 호텔 또한 악몽이다. 너무 많은 악몽이 검은 여름을 온통 뒤덮고 있다.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과 조금 잘생긴 금발의 남자에 대한 경계심이 없다는 것, 이것만은 기억해야 할 악몽이다. 

피해자가 보여주기 위해 쓴 글과 피해자가 간직하기 위해 쓴 글 사이의 간극은 너무 크다. 하지만 잘 읽어보면 피해자의 당시 상태를 알 수 있다. 확실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영원히 모를 것이다. 본인 자신조차도. 그리고 나 또한 알 수 없다. 작가는 그렇게 작품을 만들고 있다. 정말 진실은 절대 알 수 없다. 인간은 늘 보여주고자 하는 진실만을 보여줄 뿐이고 보여주고 싶지 않은 진실은 묻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사실은 알 수 있다. 그 사실 또한 비틀리고 왜곡된 채 드러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을 믿겠냐는 것이었지도 모른다. 보여지는 것, 그리고 감추고 있는 것, 나중에 드러난 것중에서 말이다. 끝까지 독자를 혼란스럽고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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