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해부
로렌스 골드스톤 지음, 임옥희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의 화가 토머스 에이킨스의 <애그뉴 박사의 임상강의>라는 작품을 표지로 하고 실제로 에이킨스를 등장시켜 리얼리티를 가미하고 있다. 작품은 작가가 홀스테드라는 의사가 코카인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에 기초해서 쓴 팩션이다. 마치 셜록 홈즈가 자신의 두뇌 활동을 위해 마약을 주사한 것처럼 홀스테드는 마취제를 실험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임상 대상으로 삼았다가 중독되었다고 한다. 이런 의사의 과학적 실험 정신과 윤리적 문제라는 양날검같은 이야기를 이 작품은 다루고 있다.  

19세기 미국 명망있는 의사 오슬러의 제자로 필라델피아의 병원에서 일하게 된 것이 자랑스럽던 전도유망한 젊은 의사 캐롤은 오슬러가 하는 시체 해부 수업에 다른 의사들과 함께 한다. 여전히 시체 해부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신은 주로 부랑자나 극빈자의 것을 몰래 돈을 주고 구하는 실정이다. 그런데 해부를 하기 위해 얼음을 채운 관을 연 순간 교수가 뚜껑을 닫고 연기를 한다. 얼핏 본 젊은 여성의 시체다. 그리고 동료 터크의 낯빛도 변한 것 같다. 의아하게 생각한 캐롤에게 갑자기 파커가 초대를 한다. 

개천에서 용이 난 격으로 어렵게 의사가 된 터크도 있고 부잣집 도련님도 있고 여성도 있는 오슬러의 학생들은 다양했다. 그 점이 더욱 오슬러 교수를 존경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출신이 그렇다보니 비밀스런 점이 많던 터크가 자신과 술을 마시고 난 뒤 병원에 나오지 않아 수소문을 해서 겨우 찾아갔더니 콜레라에 걸려 죽고 만다. 그런데 하숙집 할멈 얘기가 의사를 부르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를 수상하게  생각한 캐롤은 그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그가 독살당했음을 알아내고 경찰에 신고를 한다. 

여기에 상류층 아가씨가 캐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캐롤은 그녀에게 한 눈에 반해 그녀가 사라진 친구를 찾아달라는 요청을 수락한다. 그리고 그 여성이 오슬러 교수가 해부하려다가 만 그 여성이 아닌가에 생각이 미치자 캐롤은 탐정처럼 터크의 죽음과 레베카의 실종을 추적한다. 그러던 중 터크가 여자들을 중절수술을 해주고 돈을 받았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레베카가 그를 찾아간 사실도 알게 된다. 사건을 알고 명확하게 범인을 잡으려다가 점점 더 상황만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며 자신을 궁지로 몰아 넣는다. 물론 그것은 진실을 은폐하려는 자들의 말이지만 결과적으로 캐롤도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자, 여기 위대한 의사가 있다. 약간의 문제가 있는 의사지만 앞으로 그가 남길 업적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고 그가 구할 수 있는 생명은 짐작할 수도 없다. 그러니 그의 작은 실수는 봐줘야 하지 않겠냐고 묻고 있다. 또 다른 한 편에서는 그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실수는 간과되어서는 안된다고 답하고 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라는 대의명분으로 '소'라는 이유로 그렇게 실수로 치부되어 희생된 이들을 모두 합하면 어쩌면 '대'만큼은 되지 않을까 싶다. 역사는 늘 그렇게 말하곤 했으니까. 

문제는 의사라는 직업에 있다. 사람의 생명을 살려야 하는 의사. 물론 그들도 실수는 한다. 하지만 그 실수가 결코 묵인되거나 감춰지거나 비도덕적이어서는 안된다. 의사라고 모든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그때나 지금이나 환자가 의사에게 바라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이정도도 무리라면 의사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의사 스스로 물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실험 정신과 희생 또한 잊거나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들의 실험 정신으로 인간의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게 된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일이다. 잣대를 들이대거나 지난 일을 평가하는 일을 쉽지만 막상 내 앞에 닥치게 되면 쉽지 않은, 포기하기 힘든, 고발하거나 감싸거나 하기 어려운 선택이 될 것 같다. 
 
이 작품은 팩션이다. 그럴 듯해보이는 이야기를 하지만 정말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의사들이 의사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은 어느 집단이나 있는 일이다. 상류 사회가 보여주는 정 반대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어떤 부호는 유산으로 존스 홉킨스 병원과 의대를 지었는데 어떤 부호는 자식의 무책임함도 질책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면을 보여주는가 하면 그 시대 여성들이 미혼모로서 홀로서기를 시도했다는 점은 놀랍다.  

여러가지 사회상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가운데 무엇보다 바이엘사가 염료 회사였다는 사실과 바이엘사에서 헤로인이 처음에는 의학적으로 만든 발명품이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사실적 인물들을 적절하게 등장시켜 리얼리티를 강조하고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사실같은 묘사로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꽤 근사한 팩션이다. 이 작품은 죽음처럼 잠자던 그 시대의 일들을 독자에게 해부해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역사 앞에 올바른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 과연 올바른  선택이란 것이 존재하기나 하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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