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라는  속담은 정말 무시무시한 함축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 말이 바로 현대 도시괴담이 얼마나 빠르게 퍼지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예전에 걸어 다녀야만 하던 때도 말은 천리를 갔다. 그러니 인터넷이 생기고 통신이 발달한 지금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이고 너무 말을 많이 하는 요즘은 순식간에 퍼질 수 밖에 없게 된 것이 소문이라는 것이다. "얘, 너 그 소문 들어봤니?"라는 말 한마디가 돌고돌아서 그야말로 소문이 사람을 어떻게 죽게 만드는 지를 보여주는 작품을 작가는 만들어 낸 것이다.  

새로운 향수 광고를 하면서 홍보 전략으로 여고생을 통해 입소문을 퍼트려 성공을 거둔다. 그 입소문 중에는 뉴욕의 레인맨이라는 살인마가 살인을 저지르지만 그 향수를 뿌린 사람은 죽이지 않는다는 소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광고에서 나온 살인이야기가 현실에서 일어난다. 그 이야기 그대로. 경찰인 고구레와 나지마는 팀을 이뤄 사건을 조사한다. 고구레에게는 살해당한 여고생 또래 딸이 있고 연쇄살인이 되면서 딸의 친구가 살해당하기에 이른다. 그러면서 두 피해자가 향수 모니터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경찰 수뇌부는 이미 용의자를 점찍은 상태에서 그 인물만을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 고구레 혼자 독자적으로 수사를 하면서 눈밖에 난다. 

작품은 초반부터 소문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면서 시작한다. 일본에서 일어났던 관동대지진때 재일교포들이 학살당한 이유도 소문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도 카더라 통신은 계속 양산되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태에서 피해자들만 늘어나고 있고 도시괴담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급기야는 불신을 조장하기에 이르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라는 개인간의 신뢰가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지고 결국 국가는 손쓸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뉴스에도 나오지 않았던가. 조사를 해보니 전혀 사실과 다른 일이었는데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퍼져 엉뚱한 피해자를 만들어 마녀사냥식으로 몰아가던 것을 말이다. 그런 상황을 역이용해서 광고를 하고 상품 매출을 올리려는 상술이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무엇을 어떻게하든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면 한다는 식의 발상이 지극히 현대적이고 현실적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것 같이 느껴져서 더욱 오싹했다. 

소문과 뒷담화는 다시 한번 피해자를 억울하게 만들고 있다.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장례식에서까지 아이들의 입에 오르내려야 하는 작은 일탈 속에 살던 소녀, 그녀와는 다르게 평범하면서도 개성이 강했던 소녀, 이들의 친구들이 보여주는 자기만의 세계들과 한번 작정하면 끝까지 조사를 하는 고구레와 현장 조사와 분위기 파악에 일가견이 있는 나지마, 이 두 형사의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이면서 같은 상처로 동맹관계처럼 되어 버리고 서로 보완적인 모습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모습은 마치 서로 다른 세계가 공존하는 느낌을 준다. 이들 사이에 컴사이트라는 광고회사의 소문을 광고로 만든 직원들의 모습이 작품에 재미와 작은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작가는 인간 군상들의 욕망을 잘 묘사하고 있다. 광고란 인간 심리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십대들, 자신들이 유행을 선도한다고 생각하는 십대들의 분출되지 못하고 방황하는 욕망을 시부야 거리 소녀들을 통해 잘 나타내고 있다. 또한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잊고 출세한 쓰에무라 사장의 뒤틀린 지배욕과 아는 사람을 이용하고 자신의 말이 살인을 부른 것에 일말의 생각이나 관심도 두지 않는 면은 현대 사회 상층부의 현상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살인자의 끔찍한 욕망과 빠른 사건 해결을 위해 아무나 잡으면 된다는 식의 경찰의 보여주기식 욕망은 모두 우리 주변에서 너무도 흔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작가는 그 점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소문도 욕망이다. 누군가에게 자신만 알고 있는 것을 말하고 싶은, 또는 누군가를 공포에 떨게 만들고 싶은 인간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망. 그 욕망이 살인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이 주는 공포, 즉 소문을 즐기고 싶은 욕망의 결과를 잘 나타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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