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벽돌 무당집 1 - 공포의 방문객
양국일.양국명 지음 / 청어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이 내 눈에 띈 건 제목 때문이다. 내가 어릴 적 살았던 집이 무당이 살던 집이라 사람이 얼마 못 살고 무서워하며 이사를 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집에서 잘 살았다. 가끔 우스개소리로 그런 얘기를 했을 뿐 잊고 있었는데 이사하던 날 안 방 살림을 다 내놓고 보니 무당이 살던 집이라는 실감이 났다. 책장으로 쓰던 벽장이 무당이 만든 작은 벽장이었고 그 방안의 모양새가 점집의 분위기가 났기 때문이다. 그때 아, 정말 무당이 살았었나보다 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우리 부모님이 귀신보다 기가 더 세셨던 모양이다. 귀신이 있다면 말이다. 

그래도 난 귀신을 무서워한다. 포우의 <검은 고양이>를 읽은 후로 공포소설은 오랜 세월 못 읽었고 만화 <백귀야행>도 밤에는 안 본다. 전설의 고향은 아버지 등 뒤에서 숨어 봤고 우리나라 최고의 공포 영화 <목없는 미녀>를 봤다가 사흘을 잠을 자다 가위에 눌려 깨서 못 잤다. 그런 내가 미스터리만 보면 사족을 못쓰게 된 지라 공포소설도 미스터리로 읽으면 무섭지 않게 되어 버렸다. 어린 시절 화장실 갈때 꼭 동생이랑 같이 다니던 내가 말이다. 누구나 한번쯤 생각한 공포, 누구나 한번쯤 느껴봤을 오싹함과 정체 모를 섬뜩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을, 우리가 내면 깊숙하게 간직하고 있는 공포에 대한 원초적인 반응을 글로 작가는 보여주고 있다. 

안 봤다고 없다고 할 수도 없고 또 못 봤으니 있다고 할 수도 없는 존재가 귀신이다. 이 책은 그런 귀신에 대한 공포를 미스터리 형식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왕따로인한 괴로움에 자살을 하려다 식물인간이 되었다가 깨어난 정아라는 여학생은 아무리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해도 남동생 진규의 눈에는 좀 이상해 보인다. 누나에게 무언가 있는 것 같이 느껴져 진규는 친구 한조와 함께 누나의 정체를 파헤치기로 한다. 한편에서는 공포 카페 회원이 자신의 친구들이 겪은 귀신을 본 이야기를 듣게 되어 그 귀신이 출몰했다는 도서관에 같은 학교 친구인 은정과 우민은 귀신 체험을 하러 갔다가 진짜 귀신을 보고 만다. 그리고 은정이 사라진다.  

도서관이나 학교에는 교복을 입은 귀신이 산다. 엘리베이터에는 아줌마 귀신이 산다. 병원에는 수 많은 귀신이 산다. 서양에는 지하철에 귀신이 산다. 이것은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도시 괴담으로 하나의 사회 현상을 형상화한 이야기들이다. 현대인들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 학교 폭력이나 왕따, 입시 스트레스, 이웃과 소통하지 않는 단절된 고독,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불안한 정서, 그리고 타인에 대한 신뢰보다는 불신이라는 더 큰 문제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문제를 공포는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장르다. 이 작품은 그런 현대 사회의 문제를 잘 드러내 요소요소 적절하게 배치하고 있다.  

귀신이 산다. 세상에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 많다. 이유는 분명하다. 아직 남은 한과 미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풀어주는 것을 샤머니즘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책에 쓰여 있는 것처럼 산 사람들이 좀 더 편하기 위해서 그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다. 나쁜 건 귀신이 아니라 역시 산 사람이다. 얼마나 억울하게 죽었으면 귀신이 되어 산 자들 사이를 맴돌까 생각하면 귀신이 불쌍하다. 이것이 서양의 엑소시스트같은 영화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고 일본의 악귀들과 다른 점이다. 우리나라 귀신들은 한만 풀어주면 자신이 갈 곳으로 돌아간다. 착한 귀신들이다. 이런 예로부터 내려온 우리 귀신의 모습을 현대에 맞게 잘 묘사한 작품이다.  

작품은 정아의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중학생 진규의 모험과 귀신을 보고 귀신이 쓴 책이라는 것을 갖게 된 우민이 좋아하는 귀신이 들린 은정을 살리기 위해 애를 쓰는 과정을 교차하며 보여주고 있다. 이 점이 독자들이 더욱 호기심을 느끼게 만들어 순식간에 몰입하게 하고 있다. 예전에 <퇴마록>이 생각나는 작품이었다. 퇴마록만큼 재미있다. 아니 오히려 퇴마록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구성도 탄탄하다. 처음엔 조금 뻔하게 시작하는 것 같았는데 뒤로 갈수록 호러와 미스터리의 결합에 만족하게 되고 반전에 놀라게 된다. 호러만 있었다면 좀 무서워서 기피했을텐데 미스터리가 있어서 더 좋았다. 이 시리즈가 계속 나오기를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