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울의 물을 마르지 않게 하는 법
강호진 지음 / 영림카디널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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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사천왕상이 늘 절 들어가는 입구에 있어서 무서워 했다. 그래서 절은 거의 가지 않았다. 수학 여행때라거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산도 다니지 않는지라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그 눈이 튀어나와 마치 나를 잡으려고 달려들 것 같은 모습은 생생하다. 왜 절 입구에 그런 배치를 했을까 의문이다. 부처님께 절을 해본 적도 없다. 석가모니께서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실 때 사람들의 마음에 두려움을 먼저 안겨주고자 하셨을까 의문이 든다.   

영락사라는 절에서 불교미술을 전공하다 마찰을 일으켜 쫓겨난 현인호는 속세 친구였던 현담 스님의 부탁으로 수련생들에게 강의를 하게 된다. 그런데 스님들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거기다 그가 믿고 의지하며 찾아뵙던 홍제 스님까지 이상한 그림만 남기고 사라지셨다가 살해된 채 발견된다. 이미 절에는 그 전에도 사건이 있어 전직 경찰이 조사를 진행중이었다. 절의 일이라 경찰에 알리지 않고 내부에서 쉬쉬하는 모양새가 인호는 마땅치 않은데 자신이 찾아야 하는 그림이 있어 살인범을 쫓게 된다. 

주인공 현인호를 통해서 작가는 가장 청렴해야 할 곳이라 믿는 학교와 사찰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대학에서 교수가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다. 줄도 잘 서야 하고 백도 있어야 하고 아니면 돈이라도 들여야 한다고 하는 세상이다. 교수만 되면 연구를 어떻게 하든 논문을 표절하든 아무리 말썽이 생겨도 그때뿐이고 여전히 그들의 세상은 그들 방식으로 돌아간다. 마찬가지로 절까지 그렇게 되어 버렸다. 여기에서 변해버린 인물로 현담이 현인호와 대립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절에 사람이 많이 와서 불전함에 돈만 쌓이면 된다는 식의 생각, 자신들의 절에서 총무원장이라든가 종단에서 일할 스님이 나와야 한다는 이유로 살인도 숨기기에 바쁜 이들에게서 부처님의 대자대비한 말씀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작가는 이것을 추리소설이라는 형식으로 비판하려 한 것인 모양이다. 

우리가 불교를 믿었던 세월이 얼마인지를 생각하면 길어야 이백여년도 안된 기독교에 너무 몰입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자에서도 멀어졌다고는 하나 어찌되었든 한자 문화권인데 영어보다 한자가 더 어렵게 느껴지고 기독교적인 내용은 책을 통해 많이 접해 익숙한 반면 불교적인 내용과 글귀는 낯설고 읽기조차 힘들었다. 종교를 떠나 문화와 전통이라는 것이 너무 몰인정하게 쉽게 내쳐지는 것 같아 읽는 동안 내 스스로의 모습에서 실망감과 안타까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영락사라는 절과 그 절이 있는 주변의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 작품이지만 고립된 것도 아니고 그 안의 인물들만으로 구성된 것도 아니니 추리소설에서 말하는 클로즈드 서클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추리소설적 개념보다 불교라는 종교, 속세를 떠난 스님들이 사는 스스로가 사회와 단절과 고립을 선택한 폐쇄성이라는 점과 깨달음이라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에 대한 이야기가 독자를, 독자의 생각을 가두는 역할을 하는 정신에 대한 클로즈드 서클, 스스로가 알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갇힘에 대해 추리적 소재로 삼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생각을 종교와 사상으로 가두는 이들에 대한, 그리고 박노자의 말처럼 그것을 화석화시키는 것에 대한 반발적 심리를 다룬 작품이라고 또한 말하고 싶다.   

작품은 작가가 첫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과는 달리 괜찮았다. 어려운 용어만 덜 쓰고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불교적 용어를 이해하기 쉽게 썼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형식적으로 작품 속에 여러 간략한 장자의 이야기라던가 석가모니의 이야기, 또 김명도의 이야기와 작품 속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영락사의 몰락을 담은 이야기가 소소한 재미를 주며 눈길을 끈다. 책의 제목처럼 한 방울의 물을 마르지 않게 하는 법이 종교적으로만 거창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작가의 글이 물처럼 마르지 않게 독자가 그를 지켜줬으면 좋겠다는, 그런 면으로도 접근해보면 어떨까 싶다. 모처럼 괜찮은 추리소설이 등장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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