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 플레인스의 성녀 블랙 캣(Black Cat) 16
낸시 피커드 지음, 한정은 옮김 / 영림카디널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2007년 애거서상의 수상 작품다운 작품이다. 애거서상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대개 '선정성, 폭력성 과잉이 없으며 통상적으로 아마추어 탐정이 주인공이며 한정된 지역과 등장인물을 다룬 작품’이 후보가 된다.> 이 설명에 정확하게 어울리는 작품이며 더 나아가서 8,90년대 미국 추리소설 분위기를 이어가면서 미국식 신본격 추리소설을 코지 미스터리로 잘 나타낸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2007년 에드거 상에 선정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만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작가가 그리고 있는 켄자스시티의 스몰 플레인스라는 소도시의 풍경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가 살인과 추방이라는 청춘들의 아픔과 대비되게 잘 표현되고 있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다. 

1987년 1월 23일 단 하루 밤에 일어난 사건으로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달라진다. 그 날을 기점으로 그 이전과 그 이후로. 한 소녀는 그 날 살해당하고 모든 사람에게서 자신의 이름을 빼앗겼다. 그 소녀의 시체를 목격한 이들은 침묵으로 동맹의 맹세를 했고, 이 후 그 소녀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드는 장면을 목격한 소년은 마을에서 쫓겨났다. 자신을 지켜주리라 생각한 부모는 판사이면서도 아들이 아닌 자신들의 이웃이자 친구들을 선택한 것이다. 여기에 소년이 떠나며 첫사랑을 잃어버린 남겨진 소녀와 소년의 친구 또한 아파하며 성장했다. 죽은 소녀는 단순히 살해당한 소녀로 이름도 없이 묘지에 묻힌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그녀가 소원을 들어주는 동정녀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 뒤 17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어른이 된 추방당한 소년은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마을에 돌아온다. 그리고 그녀의 비석을 보고 자신이 잊지 않고 있음을 알리고자 마을에 남는다. 

진실이 때론 거짓보다 잔인하다는 걸 안다. 그렇다고 진실을 거짓보다 낫다고 하지는 않는다. 거짓은 속으로 곪아 퍼지며 사람을 괴롭히고 진실은 환부를 드러내 도려내는 고통을 주고 상처를 남긴다. 그 상처로 인해 진실을 알고자 한 사실을 후회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거짓이 견디기 힘들어 그것이 최선이었다는 자기 합리화라는 눈가림으로 양심을 단단하게 만드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 해도 인간은 자신에게 닥친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일과 자신을 버린 자들에 대한 복수를 막을 수는 없다.  

작은 마을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절묘한 구성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 작가는 기적이라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2007년 에드거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가 제이슨 굿윈의 <환관 탐정 미스터 야심>에게 상을 넘겨줘야 했지만 그 해 애거서상과 매커비티상을 타서 2관왕이 된 작품답게 처음에 "왜?"라는 의문을 가지게 하고 그것을 1987년과 2004년을 넘나들며 소년과 소녀의 순수한 사랑과 마을 사람들의 끈끈한 우정, 그리고 그들이 감추고 있는 가식의 뒤에 있는 것들을 차례로 보여준다. 

작은 시골 마을 스몰 플레인스, 판사 아버지를 둔 미치네 가족, 의사 아버지를 둔 애비네 가족, 보안관 아버지를 둔 렉스네 가족은 절친한 사이다. 부모들도 친구 사이고 아이들도 친구로 잘 지냈다. 하지만 이들이 친구라 하더라도 그들 사이에는 완벽한 관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이 완벽했다면 살인 사건을 조사도 하지 않고 묻어버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미치가 떠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해도 결국 숨기고자 마음을 먹는다면 그들이 알 수 없는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들은 친구라는 이유를 방패로 삼아 자신마저 속이고 있었던 것이다. 

믿음을 상실한 가족들과 기적을 믿는 사람들의 대비는 오늘날 믿음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가족에게 버림받고 의심받는 사람들이 아무런 의심없이 기적은 믿는다. 그 기적의 토대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그저 믿는다. 그것은 자신이 믿고자 하는 것만을 인간은 믿을 뿐이라는 반증 아닐까. 기적이 나쁜 것은 아니다. 기적을 믿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허구가 쌓여서 거짓이 진실이 되고 역사가 되고 신화가 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살해당한 소녀도 기적을 믿었으리라.  

작가가 작품후기에서 말한 것과 같이 한편의 동화를 현대적으로, 어른들이 읽을 수 있게 만든 작품처럼 느껴진다. 마치 <오즈의 마법사>에서 회오리바람에 날려간 도로시가 <인 콜드 블러드>에서 범죄에 휘말리는 것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렇게 읽어가면서 작품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미치가 어쩌면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스몰 플레인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이기 때문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살인과 추방, 배신과 화해, 불신과 용서가 융화되어 토네이도에 모든 것을 삼켜지고 남은 것은 다시 시작하는 것뿐이라고, 인간에게 자연이, 기적이, 동정녀가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듯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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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30 11: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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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30 14: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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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30 16: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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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30 19: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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