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의 땅 Medusa Collection 5
니키 프렌치 지음, 노진선 옮김 / 시작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누군가에게 납치, 감금당한 채 한 여자가 정신을 차린다. 머리가 아프고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러다 차츰 기억을 되살린다. 먼저 여자는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낸다. 애비라는 이름을. 그리고 직장을 기억하고 남자 친구와 친구를 기억해 낸다. 부모님을 기억하고 자신의 나이를 기억하고 대부분의 것들을 기억해내지만 납치당한 기억만은 기억해내지 못한다. 누가, 왜, 어디서 납치를 했는지. 그리고 그 자가 그녀 이외에도 많은 여자들을 그녀처럼 납치했고 살해했음을 알게 된다. 애비는 살기위해 애를 쓰다 마침내 탈출에 성공한다. 문제는 그때부터 발생한다. 

경찰과 병원의 의사들이 그녀의 이야기를 믿어주지 않는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폭력적인 남자친구때문에 일어난 그녀가 만들어낸 망상쯤으로 치부되고 무시된다. 그녀는 병원을 나와 남자 친구와 함께 살던 집에 찾아가지만 남자 친구는 자신들이 이미 헤어진 사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기억하지 못한다. 자신의 물건을 어디에 가져갔는지도 알 수 없다. 친구 집을 전전하지만 친구들 모두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 거기다 그녀는 직장을 그만 둔 기억도 없다. 이제 애비는 스스로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몇 주간의 자신의 행적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한다. 

처음 작품을 봤을 때 그녀는 왜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만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애비와 같은 처지에 놓인다면 우리집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힐 것이다. 또한 떨어져 산다고 해도 일정 기간 연락을 하지 않는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가 아무리 나쁘다고 해도, 동서양의 정서가 다르다고 해도 가장 위급할 때 자신이 도움을 청하고 기댈 수 있는 곳은 가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너무 보수적이고 낡은 사고방식인가? 애비는 감금당한 그곳에서 상상했었다. 지금 가족이, 남자 친구가, 직장 동료들이, 친구들이 경찰에 신고해서 경찰이 찾으러 올꺼라고. 그렇게 간절히 기다렸다. 그러나 그녀가 돌아온 세상에서는 그 누구도 그녀의 부재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난 혼자서 전정긍긍하며 다니는 애비가 안쓰럽다. 

하지만 현대인은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만약 어떤 여자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가끔 연락이 두절되기도 하고, 그러다가 몇 주 뒤에 나타나기도 하고, 약속을 하고 어겨도 그러려니 생각하게 만들고, 그런 일들이 이미 일상화되서 누구도 한 여자의 몇 주정도의 부재는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면 그것은 주변인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그 여자의 문제도 아니고. 이런 상황에서 경찰은 실종자를 찾지 않는다. 애비가 경찰에게 말했듯이 시체로 발견되지 않는 한 경찰은 그것을 사건으로 인식할 수 없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경찰이 사건이 발생한 뒤의 활약을 보여주는 것은 그런 사건을 예방하는 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애비가 산 자의 땅으로 돌아온 것이 다행일까? 우리가 사는 세상을 산 자의 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현대인의 심리적 악몽의 원천은 아닐까? 세상에 사람은 많고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 애인, 직장 동료가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는 고립무원 상태가 된다는 것 말이다. 누군가에게 납치당해 살해당하는 공포가 죽은 자의 땅에서 일어난 악몽이라면 이런 현대인의 고독은 산 자의 땅에서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겪는 악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이런 두가지 악몽을 심리 미스터리로 잘 풀어내고 있다. 

독자를 사로잡는 흡입력있는 작품이다. 애비의 여정은 고독한 현대인의 자아 찾기의 여정과 닮은 느낌이다. 잃어버린 기억이 얼마 되지 않는데 엄청난 것을 잃어버린 느낌을 갖는 것은 평소 많은 것을 잊고 잃고 살면서 갑자기 단 하루, 일분, 일초만 기억이 안나도 좌불안석하며 편집증적인 모습으로 돌변하는 오늘의 우리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산 자의 땅으로 돌아온 애비는 살아 돌아 온 것만으로 다시 시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모르는 범인이 자신을 노릴지도, 끝까지 추적할 거라는 떨쳐버릴 수 없는 기억에 매달려 남에게 듣고 확인해도 기억나지 않는 자신이 잃어버린 시간속으로 스스로 추적을 시작한다. 그런 애비의 모습 자체가 순간 순간 내가 감추고 있는 집착과 광기, 두려움을 드러내는 것 같아서 눈을 뗄 수 없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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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2009-01-06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두사 컬렉션은 또 처음 보는 듯; 요즘 여기저기서 정말 추리소설을 많이 내는군요. 줄거리나 이런 게 무척 흥미있게 느껴집니다.

물만두 2009-01-06 14:04   좋아요 0 | URL
이 출판사에서 추리소설을 새롭게 내고 있지요.
볼 만한 작품입니다.

Koni 2009-01-17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가끔, 가장 모를 건 가족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째 그럴까 싶다가도, 가족에게 감추는 게 가장 많을 때도 있다 싶구요.

물만두 2009-01-17 11:30   좋아요 0 | URL
그래도 나이가 들면 가족뿐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