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인질금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32
존 클리어리 지음, 이기원 옮김 / 해문출판사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아버지의 이름으로. 영화와는 상관없다. 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에도 아일랜드인들의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이 작품을 그런 쪽으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이 작품에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살아가게 되는 두 젊은이가 등장한다. 한 명은 아일랜드인 아버지를 두었기 때문에 IRA의 목적에 동참하게 되고, 다른 한 명은 자신의 아버지가 독일의 SS대원이었지만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하며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갚으려 한다. 한 명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바티칸의 보물을 훔치려다 일이 잘못되어 교황을 납치하게 되고 다른 한 명은 교황을 죽이려고 로마에 왔다가 교황의 납치범을 추적한다. 그 사이에 낀 교황의 인간적 고뇌가 잘 그려진 작품이다.  

교황청 보물을 훔치려던 얼뜨기 IRA 조직원들이 하필이면 그때 보물을 순찰 나온 교황과 마주치는 바람에 보물 대신 교황을 납치하고 인질로 삼아 인질금을 받아 내려 한다는 이야기다. 코미디 같지만 절대 코미디는 아니다. 작가가 호주 사람이라 아무래도 영국편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아니라면 IRA를 바보 집단이라고 생각되게 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일랜드에게 반감이 있던가. 작가의 사견이 들어간 작품을 읽는 것을 제일 싫어하기 때문에 이 작품도 사실 그다지 재미있게 읽지 못했다. 아주 비극적 상황인데 단 두 사람만 행복하게 남는다. 그들은 선한 인간이고 죽은 이들은 악한 인간이라는 이분법적 생각도 마음에 안 든다.  

테러리즘에 대한 반감이 높은 요즘이지만 한번쯤 테러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나라 사람들의 심정, 자신의 몸에 폭탄을 달고 자살 공격을 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심정을 헤아렸으면 싶다. 당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를 일이므로. 이 작품은 영미권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상까지 받은 작품이지만 소재에 비해 너무 생각이 편협했다고 말하고 싶다. 영미권 인간만 인간이란 말인 듯 싶고 그들에게 반기를 드는 인간들은 모조리 테러리스트에 죽을 만한 인간이라는 내용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을 바보라고 말하기는 뭐하다. 남에게 몇 백년 밟히고 살다 보면 무슨 일이든 하게 되는 법이니까. 세상은 이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말하지만 자기 땅을 힘이 약해 남에게 빼앗겨 본 사람들이라면 감히 이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들은 지금도 자신들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독립 투사요 전쟁의 한 방법인 게릴라전을 행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남에게 빼앗기만 한 사람들이 무엇을 알겠는가. IRA는 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해 지금도 싸우는 독립 투사들이고 헤즈볼라, 알 카에다 등도 마찬가지다. 천주교를 믿는 아일랜드인들을 위해 싸워 주지 못한 바티칸과 교황은 응당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교황의 인질금이든, 교황청의 보물이든.  

작가가 어떤 생각으로 이 작품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나라를 위해 어떤 방법을 쓰는 사람이든 방법이 비난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들의 절박함을 희화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당신 집에 강도가 들어와도 그것을 우스꽝스럽게 생각하겠는가.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고 당신이 평생 모은 재산을 빼앗기고 집도 다른 사람이 차지하게 되는 상황인데. 테러리즘과 테러리스트에 대한 재 정의가 필요한 시점이 지금이 아닌가 싶다.

인간에게 평화는 잠시 주어진 안식일뿐이고 전쟁이 삶의 전부라고 교황은 말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여전히 세계 각지에서 전쟁은 일어나고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면 누가 죽어도 상관하지 않는 실정이니까.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런 인간이 종교에 집착하는 이유도 어쩌면 자신들의 이런 잔인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단지 재미있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작품이었다. 작가의 의도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았다. 교황의 납치는 조금 황당하게 이루어졌고 마지막의 결말은 비극과 희극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니. 어쨌든 세상은 살아남은 자만을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인지. 참 감정을 애매모호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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