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블랜디시 동서 미스터리 북스 127
제임스 해들리 체이스 지음, 이태주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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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목이 <No Orchids for Miss Bladish>다. 예전에는 <미스 블랜디시의 위난>이라는 제목으로 나왔었다. 그때 난이라는 글자가 蘭이기도 했고 難이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앞의 난으로 원제 그대로 했는데 우리 실정으로는 뒤의 難자가 더 어울렸던 모양이다. 도대체 Orchid가 어떤 성격의 단어인지 모르겠다. 난초나 연보랏빛 이외의 어떤 뜻이 있는 것인지. 어쨌든 미스 블랜디시에게는 난초가 없다??? 난초가 온실 속 화초나 행복에 대한 뜻이라면 맞는 말이다.  

미스 블랜디시의 고가의 목걸이를 노린 조무래기 갱들이 목걸이를 훔치려다 얼떨결에 살인을 저지르고 미스 블랜디시를 납치해 몸값을 요구하려 하지만 더 큰 갱에게 들켜 살해당하고 미스 블랜디시는 더 큰 곤경에 빠지게 된다. 경찰은 조무래기 갱들의 소재만 파악하려 하고 그녀의 아버지도 몸값을 조무래기 갱들에게 주었다고 생각할 뿐이다. 이렇게 갱들은 완전범죄를 저지르고 유유히 다른 도시로 옮겨 나이트클럽을 차린다. 이때 그녀의 아버지는 탐정을 고용하고 고용된 유능한 탐정은 미스 블랜디시를 찾아내지만 그녀는 이미 만신창이가 된 뒤였다. 그러니 그 뒤 어떻게 되었을까.

이 작품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앞부분은 미스 블랜디시가 납치 당하고 무사히 돈을 받아 악당들이 사라지기까지의 일련의 사건의 나열이다. 뒷부분은 돈을 주고도 딸을 돌려 받지 못한 미스터 블랜디시가 탐정을 찾아와 딸을 찾아 달라고 의뢰하고 탐정이 미스 블랜디시를 찾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양지의 권력과 음지의 권력의 싸움을 그린 하드보일드 작품이다. 작품 배경이 1938년인 만큼 경찰도 폭력적이고 갱들은 난무하고 부자들도, 그 부자의 자식도 자신의 힘만 믿고 산다. 첫 장면에서 미스 블랜디시가 값비싼 목걸이를 걸고 아무런 보호 없이 다니지 않았다면, 조무래기 갱에게 잡혔을 때 재빨리 목걸이만 넘겼다면 상황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 아버지가 누군 줄 알아? 하는 식의 행동이나 갱들의 납치, 감금은 같은 방법이다.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 부자인 그녀의 아버지도 양지의 인물이기는 하지만 죄 지은 것이 많았을 것이고 그 아버지의 돈을 물쓰듯하는 자식의 거들먹거림 또한 정글의 법칙이다.

갱들의 총질도 정글의 법칙이다. 조무래기 갱을 제압하고 좀 더 강한 갱들이 미스 블랜디시를 낚아 채가는 것도 그들만의 정글의 법칙이고 돈 때문에 미스 블랜디시를 찾아 나서는 탐정의 행동의 과격함, 경찰의 과격함도 정글의 법칙이다. 이 작품을 보면 미스 블랜디시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어리석은 온실 속의 화초였고 그 화초가 온실 밖에서 겪는 일은 당연히 냉혹한 법이니까.  

이 작품은 원판의 번역이 아니다. 영국에서도 원판은 너무 잔인해서 많이 수정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그 수정판의 번역이다. 마지막 미스 블랜디시의 행동에서 알 수 있듯이 결말은 탐정이 원한 대로였지 않나 싶다.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한다. 개똥밭을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고. 그러면서 살면서 한번쯤은 이런 말을 내뱉고는 한다. 죽지 못해 산다고. 이 작품은 그 말 그대로 미스 블랜디시의 죽지 못해 사는 과정을 담고 있다.

하드보일드를 표방하는 작품으로 갱들의 싸움과 갱과 경찰의 싸움이 적나라하게 표현되고 있고 그 가운데 희생되는 많은 여자들, 미스 블랜디시는 제외하고도 안나라든가, 나이트클럽 접수계의 여직원 모두 한 시대에 희생될 수밖에 없는 약한 고리가 아니었나 싶다. 강을 건너는 누우 무리 중 가장 약한 것들만이 악어의 표적이 되는 법이니까. 냉혹한 정글의 법칙을 잘 표현한 작품이었다. 

작가는 한편의 잘 쓰인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라고 말하지만 이런 것을 재미로 읽어야 한다는 것은 고문하는 광경을 구경하는 것과 같다. 하긴 우린 항상 그런 것을 보고 즐기지만. 하드보일드 납치 소설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지만 여과 없이 동정 없이 보여주고 있다. 군더더기 없이 잘 쓰여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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