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가득히 동서 미스터리 북스 87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문운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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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운명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 운명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왜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는데, 또 어떤 사람은 빈손과 학대를 달고 태어나는 것일까... 그럴 때마다 중학교 수학 시간에 배운 확률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어쩜 태어나기 전 커다란 주머니 두 개 중 하나를 선택했을 지 모른다. 행운이라는 공이 하나 들어 있고 나머지는 불운으로 가득 찬 주머니와 불운이라는 공이 하나 들어 있고 나머지는 행운의 공으로 가득 찬 주머니를...

처음 확률은 1/2이었다. 하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한 뒤 우리는 그 안에 손을 집어넣어 하나의 공을 움켜쥐게 된다. 어쩌면 행운이 가득한 주머니를 선택하고 행운의 공을 움켜 쥘 지도 모른다. 하지만 행운이 가득 찬 주머니 속에서 단 하나 있던 불운이라는 공을 집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태어나면 인생은 그때부터 또 다른 길목마다 그런 주머니 안에 손을 집어넣는 확률의 연속이 시작되는 것이다.

딕키는 행운이라는 공을 선택해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지만 마지막 길목에서 톰이라는 불운을 선택하게 되고 톰은 불운이라는 공을 선택해서 태어났지만 행운이라는 공을 잡는 길목에서 딕키의 아버지라는 행운을 만나고 길목마다 행운이라는 공을 잡게 된다. 이것을 행운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톰이 바라던 행운이었기에 행운이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 톰의 행운이 어디까지 가게 될지는 이 작품이 시리즈이므로 더 번역되면 알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여기서 그와 작별해야 할 것 같다. 딕키의 불운을 측은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톰의 행운이 부러운 것은 아니다. 저마다 행운이라는 조건은 다른 법이니까...

이 작품은 작가의 단편 '대통령의 넥타이'에서의 주인공을 연상시킨다. 아마도 작가가 생각하는 범죄자의 유형, 선호하는 범죄자의 유형은 이런 모습인 모양이다. 나약해 보이고 선해 보이면서도 그 안에 잔인한 악을 품고 있는 소년의 이미지... 완전범죄의 대작으로 알려져 있는 카트린느 아를레의 '지푸라기 여자'가 가슴 답답하게 만드는 완전범죄를 지향하고 있다면 이 작품은 독자를 완전범죄에 동참하게 하고 주인공을 응원하게 하는 상반된 완전범죄를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작품이 더 나은 것 같다. 모처럼 톰 리플리 시리즈를 출판했으니 시리즈 모두가 출판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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