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 혐오 동서 미스터리 북스 64
에드 맥베인 지음, 석인해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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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시리즈가 모두 출판되길 희망하고 있지만 그것은 요원할 것 같고 추리 소설에 좀 더 깊은 관심이 있다면 단편 하나에도 애정이 가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 때문에 해문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 초에 작가가 발표한 단편 '한밤의 공허한 시간'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책을 거금을 주고 또 사고 말았다. 어쩔 수가 없었다.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는 가장 좋아하는 경찰 시리즈이므로.  

장편 <경관 혐오>는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 제 1편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경관 연쇄 살인을 다룬 작품이다. 경찰이 아무 이유도 없이 권총으로 살해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자 경찰들은 긴장하고 기자들은 소문을 들추고 다닌다. 그것도 87분서에 근무하는 형사들만이 범인의 목표다. 처음에는 원한 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칼레라는 사생활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연쇄 살인 사건 사이의 공통점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혹은 돌을 던지는 시민처럼 정말 경찰들을 혐오하는 누군가의 짓인지 점점 살인 사건이 늘어갈수록 칼레라는 동분서주하게 된다. 과연 범인은 단지 경찰이 싫은 것일까,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일까 굼금해진다.  

이 작품을 통해 경찰 소설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또한 칼레라와 그의 동료들의 각기 다른 성격을 파악하는 재미가 있고 칼레라와 그의 여자친구인 테디의 등장도 흥미롭다. 여기에 그 시대가 품고 있는 인종차별의 문제, 즉 흑인과 백인의 문제뿐 아니라 유대인과 아일랜드인에 대한 감정과 경찰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알력이 이 작품을 진지하게 보게 만든다. 나쁜 경찰, 좋은 경찰의 구도도 빠지지 않고 들어 있다. 그러니까 경찰 소설의 교과서라 할만한 작품이다.   

단편 <한 밤중의 공허한 시간>은 한 여자의 죽음이 경찰을 혼란에 빠뜨리는 이중성을 묘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마지막 형사의 안타까운 마음이 이 시리즈의 매력을 대변하는 듯 보여진다. 그것은 내가 이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용은 한 여자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처음에 흑인으로 알았던 여자가 백인으로 밝혀지고 그 여자의 사촌이 죽었다는 사실과 금발과 흑발에 대한 이야기가 묘하게 세바스티앙 자프리조의 <신데렐라의 함정>을 연상시키는 멋진 단편이다.   

이 작품은 누가 범인인가나 왜 죽임을 당했나가 관점이 아니다. 물론 칼레라와 메이어 메이어는 이런 기본적 생각을 가지고 수사를 시작하지만 이 작품의 제목이 시사하듯 인간이 살면서 벌이는 몸부림은 한밤의 공허한 시간에 묻혀 그렇게 사라지고 마는 안타까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단편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칼레라의 자조적인 한마디가 인간의 측은지심에 대한 단적인 표현같이 느껴져 혹 이 작품도 장편으로 거듭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만들었다. '정직'이 '포이즌'이라는 장편을 낳고 '그녀의 죽을 때 이름은 새디였다'가 동명의 장편이 되었듯이.  

가공의 도시 아이솔라를 배경으로 에드 맥베인은 경찰 소설의 백미로 꼽히는 87분서 시리즈를 탕생시켰다. 이 시리즈는 정말 모두 출판되기를 바라는 시리즈다. 정말 보면 볼수록 중독이 되는 작품들이다. 경찰소설이라고해서 요즘 나온 작품들처럼 하드보일드한 작품은 아니다. 그렇다고 기존의 본격 추리소설도 아니다. 그 중간 지점에서 균형을 잡아주며 경찰 소설이 가진 매력만으로 작품을 만들어 가고 경찰 소설의 선구자 역할을 하는 작품이다. 모든 탐정 소설이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의 영향을 받았다면 모든 경찰 소설은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 안에서 작가는 시대를 이야기하고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다. 스쳐지나가고 남아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처럼 여기에 담겨있다. 경찰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를 좀 더 들여다보게 된다. 또한 그들이 변하고 나이를 먹듯 우리 또한 그렇게 그들과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단순한 추리소설이 아닌 경찰소설이 아닌 인생 이야기로 진화하게 된다. 그것이 이 시리즈의 진정한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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