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카라 - 바깥의 소설 26
레오나르도 파두라 지음, 고혜선 옮김 / 현대문학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처음 접하는 쿠바 작가의 작품이고 쿠바의 추리 소설이다. 중남미 소설들은 모두가 알다시피 이해하기 어려운 환상 문학을 주로 추구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작가들, <백년 동안의 고독>의 마르께스나 <픽션들>의 보르헤스가 이런 작품을 선보이는데 이들 작품은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난해하고 미로처럼 한번 빠지면 좀처럼 출구를 찾기 힘들게 만들어져 있어 독자의 머리를 어지럽힌다. 그래서 중남미 작가의 작품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출판사에 대한 믿음도 있고 또 내가 너무 영미권이나 프랑스, 일본 문학에 편중된 감이 있어 무게 중심을 균형 잡는다는 차원에서 읽게 되었다. 바깥의 소설이라는 시리즈 제목이 마음에 들기도 했고.   

쿠바 혁명 정부의 가면을 벗긴 미학적 추리 소설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작품은 어떤 면에서 <거미 여인의 키스>적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게이의 등장과 콘데에게 추리의 길을 알려주는 날개 꺾인 연출가인 예전에는 반동이었지만 십 년의 세월이 흐르자 문학계의 신적 존재가 된 알베르토 마르케스의 과거 회상 장면이 몽환적 환상을 자나 내 현실 도피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쿠바의 현실은 비참함 그 자체인데 말이다. 혁명 직후는 좋았다. 꿈이 있었으니까. 그때가 콘데가 가고 싶어하는 어린 시절이다. 작가를 꿈꾸던 시절. 그의 친구 말라깽이가 아직 성한 두 다리로 다니던 시절. 지금 콘데는 형사가 되어 믿었던 동료의 부패를 목격하고 말라깽이는 앙골라 내전에 참가했다 휠체어 신세가 되어 뚱보로 앉아 있게 되어 꿈도 희망도 사라진 지 오래지만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목숨이기에 다시 한번 꿈을 꾸려 한다.   

아멜리 노통의 「적의 화장법」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에서의 화장법이 뜻하는 것은 위장, 위선, 거짓 등등. 이런 뜻이다. 이 작품 「마스카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마스크를 뜻하는 이 말들은 인간의 허상들을 말해 준다. 처음 읽는 쿠바 작가의 작품이다. 여장을 하고 살해당한 한 남자의 시신을 둘러싸고 살인자를 찾으려는 형사의 눈에 비친 쿠바의 오늘과 어제, 그리고 미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미스터리 작품이지만 그 안의 한 연극 연출가의 비틀린 삶이 마치 액자 소설처럼 펼쳐져 쿠바, 그 자체가 쓰고 있는 가면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체 게바라」를 읽으면 자본주의에 맞선 혁명 국가, 카스트로의 나라로 생각될 수 있지만 이 작품 안의 정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삶을 보게 되면 그 혁명이라는 것이 누굴 위한 것이었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쿠바 작가의 작품은 처음 읽었다. 출판사의 시리즈 제목이 바깥의 소설이니 우리 얼마나 영미권과 일본 편향적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품은 작가의 노벨라 네그라 4부작 시리즈 중 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런데 노벨라 네그라가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다. 우린 모두 가면을 쓰고 산다. 어릴 적 나는 우리가 어떤 명찰을 달기 위해 세상을 산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 명찰을 어떤 것이든 달아야만 한다는 것이 무척 싫었다.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다. 사상이나 이념을 배제하고라도 사회를 구성하는 것에는 기득권자와 피 기득권자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기득권자에 대한 피 기득권자에 대한 핍박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사회주의 혁명에 의해 탄생한 나라가 가난에 찌들고 내부적으로 부패하고 절망감에 쌓여 살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닐까. 단순하게 여장남자 게이의 살해 사건이 초점이 아니라 콘데 형사 주변 인물들이 쓰고 사는 가면을 통해 쿠바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는 작품인 이 작품은 비단 쿠바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사회에도 적용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 사회도 이런 가면이 수도 없이 많다. 그것은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일 것이고 절대 벗겨지지 않을 것이다. 어떤 자의 가면을 벗겼다고 안도해도 다른 사람이 그 가면을 이어 받아 쓸 것이고 지금의 나조차도 어떤 가면을 쓰고 있을 테니까. 단지 인정하지 않을 뿐.   

읽어보니 신선했다. 내가 알지 못했던 쿠바라는 나라의 정치 상황과 소시민의 일상을 알 수 있었다. 시거나 체 게바라, 아바나의 서구인의 추억으로 엿보는 쿠바가 아닌 내 눈으로 들여다보는 쿠바. 우리와 다르지 않은 그들. 작가가 북한이 아닌 남한에서 작품을 출판하고 싶다고 해서 감격했다는 말이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다양한 시각을 가져야만 할 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가면이 아닌 본질을 파악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정말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작가는 애써 작품에서 모든 이들에게 가면을 씌우고 벗기면서 또 다른 가면을 쓰기를 준비시킨다. 아마도 그것이 인생인 모양이다. 어떤 사회적 모순과 처해진 실상의 다른 점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사는 곳은 어쩜 이렇게 똑같은지.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니라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기왕 쿠바 작가의 작품을 소개한 만큼 책임을 가지고 시리즈를 모두 출판해 주시는 것은 어떨지.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더 읽고 싶다. 다른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의 작품보다 읽기 쉬우면서 독특한 쿠바를 잘 나타내고 그러면서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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