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스피노자를 죽였을까
이은 지음 / 문학수첩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우리 나라 추리 소설에 목말라 하는 독자다. 작가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추리 소설의 역사가 미천하고 사회적 제약이나 인식의 부족으로 많은 어려움에 아직까지 처해 있는 추리 소설이 나아갈 길은 우회로를 뚫는 것이다. 처음에 나는 그래서 도대체 누가 스피노자를 죽였냐고 작가에게 물었다. 하지만 누가 죽였는지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추리 소설에도 많은 소재가 있어야 한다. 아이디어 싸움인 것이다. 어떤 아이디어? 물론 추리 기법적 아이디어다.

본격 추리 소설에서의 트릭이나 하드보일드의 분위기 구성이나, 자기 사회의 문제점의 파악과 본질에 대한 냉철한 분석 등 모든 것이 추리 소설의 소재고 아이디어다. 그러니까 우리 나라 추리 소설의 극단적 문제점은 이런 아이디어의 부제다. 우리 나라 추리 소설가의 웬만한 작품은 한편씩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실망했었다. 그런 내 앞에 이 작가가 등장했다. 작가에게 호기심이 일었다. 대관절 누구신지. 왜 내가 당신을 모르고 지낸 것인지. 영화 감독들에게 영화로 만들라고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누가 과연 개 스피노자를 죽였을까. 남자는 자신이 사는 환상 타운의 모든 사람들을 용의 선상에 놓는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가 묻는다. 물을 때마다 그들은 저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 자신만의 잣대로 난도질하고 남자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은 서로 싫어하는 사람이 개를 죽였을 거라고 말한다. 남자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차 자신의 개 스피노자를 누가 죽였을까를 잊는다. 더 이상 그것은 그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는 다른 삶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사는 자, 계속 살아야 하는 자가 죽은 자, 죽은 것,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오랫동안 생각할 수는 없다. 그것은 어불성설이다.  

6가구밖에 안 사는 독신자 타운인 환상 타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간과하지 말하고 이것이 우리들의 일이라고. 현대인들의 병폐를 꼬집으면서 그것을 있는 그대로 그들의 외로움의 발로라고 끝을 맺는 주인공의 느긋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면서 가장 잔인하게 느껴졌다. 스피노자의 살해에 대한 그의 생각 역시 우리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니까. 이 작품은 스피노자를 누가 죽였는가에 대한 주인공의 자책과 환상 타운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통해 우리가 겪고 있는 현대인의 문제점을 성찰할 기회를 준다. 결국 모든 사람들의 거짓말 속에 들어 있는 진실...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조금 어긋난 사람들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의 거울에 비쳐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주인공은 환상 타운 사람들의 외로움, 전갈과 개구리의 이야기, 별에 대한 생각은 하면서 정작 한 생명이 존재했다 허무하게 사라졌다는 사실은 반나절만에 극복한다. 이것으로 주인공도 환상 타운의 완벽한 일원이 되는 것이다. 이기적인 어긋남과 조우하면서. 우리는 영원히 스피노자의 살인자를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알 수는 있다. 스피노자를 죽인 이는 우리들 가운데 있다는 것을. 엉뚱하게도 이 작품을 읽으면서 뒤렌마트의 <약속>이 생각났다. 결과가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닌 사회의 부조리를 나 또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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