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행의 순례자 캐드펠 시리즈 10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199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자들은 흔히 이런 고민에 빠진다. 삼류 소설에서처럼, 삼류 드라마에서처럼 사랑이냐 의리냐 하고 말이다. 한 남자가 고행의 순례를 떠나고 있다. 그 남자 곁에는 한 남자가 따르고 있다. 그 둘은 친구처럼 보인다. 그를 따르던 남자가 우연히 만난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과연 남자의 선택은.  

이 작품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기적으로 일어서게 된 룬 수사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작품에서는 수사가 아니지만. 그의 맑고 투명한 영혼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다. 그의 모습에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올바른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종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그 종교가 무엇이든 간에 이런 자세를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무신론자인 나도 가끔 신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다. 이런 책을 읽을 때면 더 그렇다. 신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다 보면 그 신을 믿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신의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한다. 모든 종교인이 룬 수사나 적어도 캐드펠 수사와 같은 모습이라면 종교도 믿어 볼 만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명예란 무엇인가. 대치와 반목과 전쟁의 시대에 지켜야 하는 명예란 과연 어떤 것인가. 남을 존중하는 것. 그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라 해도, 그가 종교가 다른 이라 해도, 그가 내 목숨을 위협하는 적이라 할지라도 서로가 공정하고 정직하다면 서로 다른 위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명예라고 생각한다. 아니 캐드펠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리차드왕을 따르는 사람이든, 모드황후를 지지하는 이든.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던지,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이던지, 지위가 높은 영주이든, 낮은 농노이든 서로가 믿고 따르는 가치관 그대로를 인정하고 그 위에 합리적인 이해와 화해를 이루자고 말한다. 그래서 설사 전쟁에서는 서로의 목숨을 노리고 싸우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이라고 해서 으슥한 골목에서 등뒤를 노리고 칼을 들이대는 자기편 사람조차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명예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다른 편 사람이 사악하고 치졸한 자기편에게 당하는 것을 그저 바라볼 수도 없는 일이다. 옳은 일이 아니라고 명예가 말을 하니까. 성녀가 내리는 기적이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들 서로가 사랑하고 믿고 의지하고 화해와 협력을 통해 평화와 안식을 이루는 일 아닐까. 지금 자신의 종교만을 옳다고 말하는 사람들, 자신들 사상만이 최고라고 떠드는 이들, 작게는 제 사랑만이 존재하고 남의 사랑은 무시하는 편협한 이들, 반성하기 바란다. 하늘에 계신 모든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믿는 어떤 분이 비를 내리고 계신다. 그 분이 경고하는 뜻을 부디 이해하기를.

내가 만약 신이라고 한다면 - 물론 이런 생각을 하면 안되겠지만 - 내게서 아무런 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나를 믿어 주는 인간이 훨씬 예뻐서 그의 소원을 가장 먼저 들어줄 것 같다. 또,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가진 전부를 바치면서 그것의 가치에 부끄러워하는 자를 더욱 어여삐 여길 것 같다. 적어도 인간보다 높은 곳에 있는 신이라면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사람들도 모두 공감하리라고 믿는다. 그러면서도 인간인지라 바라는 신의 모습과 다르게 행동하고 알면서도 신이 원하리라고 믿는 대로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남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기도하고, 그것도 모자라 신을 내세워 자신의 허물을 덮으려 하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들의 눈에는 고행을 하는 순례자로 비칠 수 있어도 하느님의 눈은 속일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무서운 무지는 이런 사실도 잊어버리게 만든다. 아, 하느님은 참 슬프시겠다. 이런 이들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시끄러워 잠도 못 주무시겠다. 가끔 하느님은 기적을 보이시고 내 뜻은 이런 거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우리는 이 또한 파악하지 못한다. 우리의 죄는 너무 커서 천국에 갈 생각은 하지도 말아야 할 지 모른다. 양심이 있다면 말이다.  

옛날부터 사람들에게 범접할 수 없는 장소나 인물, 사상 등이 있었다. 중세 시대 유럽에서는 카톨릭교나 성당이 그런 일을 했다. 그곳은 사람들의 정의나 진실을 위한 약한 사람들의 피난처 구실을 했기도 했지만 반대로 자신의 죄를 감추고 벌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한 힘없고 정의만으로 충만한 의리 있는 자가 벌받지 않고 도망가려는 자를 가만둘 수밖에 없다면 그는 도대체 정의를 어떤 방식으로 실현시킬 수 있을까. 하느님은 의지 있고 정의로운 자를 내려보내 인간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시는 것 같다. 그것은 이 시대에 정의로운 자가 하느님의 신하라는 이야기는 아닐까. 거짓되게 종교를 믿는 지도자나 종교를 이용해 권력을 잡으려는 종교인이 아니라 말이다. 아만도 이 작품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