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나무 아래의 죽음 캐드펠 시리즈 13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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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세기에 살인이 일어났다해도 그건 지금같은 사악한 살인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살인에 어떤 트릭이라든지 치밀한 추리는 요구되지 않는다. 캐드펠 시리즈를 읽으면서 그런 것을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좀더 자극적인 다른 작품을 찾아야 할 것이다.  

1141년의 6월의 잉글랜드의 하늘이 어떠했는지, 숲은 어떤 향기를 피우고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어울려 살았는 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 착품을 읽으면 한눈에 시루즈베리 시의 풍경이 들어온다. 그 속에서 사람들이 숨을 쉬고 끊임없이 자라고 행복을 이야기한다.  

어느 시대나 어느 곳이나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면 돈과 지위는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사람들은 그것을 위해 싸우고, 지키기 위해 투쟁한다. 여자는 어느 시대나 약자다. 돈과 지위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남자들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세상은 생각한다. 여자들은 태어나서 성장할 때까지는 아버지의 보호를 받고 결혼을 하고 나면 남편의 보호를 받게 된다.  

돈은 있으나 보호해 줄 남자가 없는 여자는 많은 남자들의 표적이 된다. 돈과 지위 때문에 남자들은 여자를 가만두지 않는다. 그리고 살인이 일어난다. 여자의 돈 때문에 일어난 살인은 참으로 추한 인간의 단면을 보여주지만 그 살인으로 여자는 눈을 뜨고 새로운 사랑을 찾게 된다. 정원의 장미 나무는 불에 타 없어져도 사랑이라는 장미는 사라질 수 없는 마음속에 꽃을 피운다. 어김없이, 언제나.  

282쪽에 이런 대화가 등장한다. 이 작품을 대변하는,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이다. 그리고 그것을 캐드펠은 잘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 모든 삶, 제가 알고 느끼는 모든 것, 제 곁으로 다가오는 모든 사람들은 그 집과 그 장미나무 주위에서 맴돌고 있어요. 그 집을 떠나지 말걸 그랬어요. 수도원에 그 집을 기부한 뒤에도 여전히 그 집에 세들어 살 수도 있었는데. 사랑이 깃들이던 그 집을 저버린 건 잘못이었어요.'
캐드펠은 잘 통제된 그 목소리에 어린 떨림과 열기를 감지하고, 창백하고 피로에 보이던 얼굴이 불 밝힌 등잔처럼 환하게 피어나는 걸 지켜보면서 생각했다. 사랑이 깃들인 곳이라.

살인이라는 잔혹한 일들도 그들의 작은 평화를 깨트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지적인 캐드펠 수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고, 행정장관 휴 버링가가 든든하게 악한 적으로부터 그들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그루 사랑의 상징인 장미나무는 불에 탔어도 그윽한 향기를 천년 후에까지 풍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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