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튼 숲의 은둔자 캐드펠 시리즈 14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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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에 상처를 입고 시름시름 앓던 이튼의 영주 리처드 루델이 죽는다. 그때 이 영지를 물려받을 상속자는 겨우 열 살의 어린 아들뿐이었다. 할머니 디오니지어 부인은 주위의 좋은 영지를 얻기 위해 어린 손자를 정략 결혼 시킬 음모를 꾸미고, 그것을 생전에 알고 있던 아버지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수도원 원장 라덜프스에게 아들의 모든 것을 위임한다. 어린 영주 리처드를 두고 벌이는 라덜프스 수도원장과 디오니지어 부인의 한판 힘 겨루기. 이때 홀연히 은자 임을 자청하고 에이튼 숲에 나타나 디오니지어 부인에게 몸을 의탁하는 은자 커스레드와 그의 하인 히아신스. 그리고 자신의 사라진 농노를 찾기 위해 시루즈베리까지 온 욕심 많고 사악한 드로고 보시에. 그리고 이어지는 죽음과 사라지는 아이.  

130-131쪽에 걸쳐 캐드펠이 하는 이야기가 참 공감이 간다. 정말 인간은 왜 이리도 어리석은 것인지...  

캐드펠은 솔직하게 털어놨다. '나는 사람들이 살인을 하는 이유들에 관해 생각하고 있다네. 탐욕이 그 중의 하나지. 그리고 그건 상속을 받고 싶어 안달을 하는 아들의 마음속에서 싹틀 수도 있어. 증오 역시 살인을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되는데 학대받는 하인은 기회가 생길 경우 기꺼이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지. 하지만 또 다른, 좀더 괴상한 이유들도 있어. 단순한 도벽 때문에, 그리고 희생자가 나중에 아무 소리도 지껄이지 못하도록 뒷마무리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 그런 짓을 하는 경우들 같은 것. 딱한 일이야, 휴, 정말 딱한 일이야.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데 그렇게 때 이르게 죽음을 재촉하다니.'   

似而非라는 말은 겉으로는 비슷하나 본질은 완전히 다른 것이거나 가짜를 뜻한다. 대표적인 예가 사이비 종교다. 그것은 종교나 종교인이 가장 꾸며대기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검증 받기도 쉽지 않고 검증할 방법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사이비 종교인들은 먼 옛날부터 존재하던 가장 원조격의 사기꾼일 것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은둔자와 그를 믿는 사람이 나오게 된 것도, 그리고 사건의 해결에 이르게 된 것도 모두 인간의 왜곡된 믿음과 그것을 부추기는 자와 신의 뜻을 자신의 생각대로 판단하는 오만에서 비롯된다. 이런 오류는 가장 선한 자, 가장 약한 자에게 향하게 되고 종교가 힘의 논리에 지배된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종교가 삶의 자연스런 일부분이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종교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삶이란 그릇되고 왜곡된 많은 것들로 이루어진 인간의 욕심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 종교도 비뚤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그 욕심으로 신을 자기 중심적으로 믿게 된다는 뜻이다. 완전한 구도자의 삶이 아닌 한 종교를 가진다는 것과 그 종교의 교리를 따른다는 것, 그리고 산다는 것은 타협 속에 본래의 모습을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너무 종교인임을 내세우기보다는 자신의 삶에서 욕심을 버리는 것이 어떨지. 아마도 이 작품의 마지막 가르침은 이것 아닌가 생각된다. 

어린 아들에 대한 사랑이 이번 작품의 줄거리다. 그 시대에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빈번했을 정략 결혼, 그 결혼에 희생되어야 하는 열 살의 어린 아들과 그 어린 소년과 정략 결혼해야 하는 사랑에 대해 알고 있는 그보다 나이가 많은 신부, 사랑보다는 부를 원하는 욕심 많은 손자의 늙은 할머니와 소녀의 아버지, 그들을 막기 위해 싸우는 수도사들과 이때 에이튼 숲에 나타난 정체 모를 은자와 그의 하인. 중세의 숲에서 일어나는 인간들의 욕심과 그런 추악함 속에서도 인간의 정의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    

사람의 욕심은 시대를 초월해서 끝이 없는 모양이다. 천년 전에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심 때문에 아이들을 이용했고 지금도 욕심 때문에 아이들을 자신의 손안에 넣고 마음대로 휘두르려 한다. 아이들의 인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예전보다 영악해 진다는 것은 어쩌면 보호본능에서 나온 것일 지도 모른다.  

천여 년 전의 생활과 그때 사람들의 생각까지 알 수 있는 아름다운 작품! 역사 추리소설의 최고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만한 캐드펠 시리즈! 다음 작품이 빨리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추리 소설이라기보다는 한편의 역사 소설, 로맨스 소설을 읽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하는 작품이다. 진정 사람답게 살고 사람다운 교육을 원하는 사람들은 읽고 자녀들에게 권할 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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