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삼부작
폴 오스터 지음, 한기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1996년 5월
평점 :
절판


에드거상 최우수 장편 부문 1986년도 노미네이트되었던 작품이라 기대가 컸다. 그의 다른 작품인 <스퀴즈 플레이>가 재미있었기 때문에 더욱 읽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 작품은 내가 상상한 그런 작품이 아니다. 이 작품은 추리 소설이 아니다. 형식은 추리 소설을 빌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도 아닌 것 같지만 내용은 추리 소설처럼 간단하지 않다. 그래서 읽는데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유리의 도시>, <유령들>, <잠겨 있는 방>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같은 형식의 다른 결말을 보여주는 독특한 형식의 작품들이다. 모두 누가 누군가의 쫓는 것으로 시작되지만 <유리의 도시>에서는 그 쫓는 이가 목적을 상실하는 것으로 결말을 내고, <유령들>에서는 그 목적을 알게 되지만 그 자신의 행위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결말이 나고, <잠겨 있는 방>에서는 가장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것도 결국은 쫓기는 자에 의한 조작이 되고 끝까지 이용당하는 결말로 끝난다. <유리의 도시>와 <유령들>에서는 어쨌든 그들이 들어가려 하는 방에 들어가기는 하지만 <잠겨 있는 방>에서는 그 방에조차 들어가 보지 못한다.

이 작품 <유리의 도시>, <유령들>, <잠겨 있는 방>은 자아의 성찰과 글쓰기에 대한 성찰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역자의 후기에서처럼 읽고 나면 정체 불명의 어떤 것을 감시하거나 쫓던 탐정은 자기가 쫓던 것을 잊어버리게 되고 쫓던 자와 쫓기던 자가 하나가 되고 만다. 그리고 모든 것은 무로 돌아간다.

인식이라는 유령들과 함께 유리의 도시에 있는 잠겨있는 방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각자 모두 자신에게 쫓기고 그런 자신을 쫓는 존재이고 그것은 때론 파괴적으로 자신을 없애기도 하고, 도망가게 만들기도 하고, 그것을 부정하게 만들면서 삶을 유지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 결국 삶이란 우발적인 사실들의 집합체이며, 우연한 교차나 요행, 또는 목적이 없다는 것 말고 달리 아무 것도 찾아볼 수 없는 임의적인 사건들의 연대기일 뿐이다. (p.294) - 

이 한 구절만이 이 작품을 통틀어 내가 공감할 수 있었던 부분이라는 점이 안타깝다. 참 읽기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작품이었다. 아둔한 내 머리가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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