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책 1 - 한밤의 식육열차 - 뉴 라인 호러 001
클라이브 바커 지음, 정은지 도희정 옮김 / 씨엔씨미디어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공포 미스터리의 대가 클라이브 바커가 쓴 이 책은 제목처럼 책에서 피가 뚝뚝 흐르는 듯한 기괴한 느낌을 주는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비위가 약하거나 심장이 강하지 못한 독자는 롤러코스터를 탈 때의 주의 사항인 노약자나 임산부는 사용을 못한다는 문구처럼 읽지 않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된다. 아니라면 지하철을 탈 때마다 혹시 이 지하철에서 졸다가 내릴 역을 놓치게 되면 백정이 나타나 매달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이 작품의 제목이 피의 책인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뉴욕의 지하를 지나는 지하철이 갑자기 한 명의 지정된 도살자에 의해 인육 열차가 되어 인간은 아무도 모르는 신성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가고 그곳 사람들은 인육을 먹어야만 도시가 유지된다고 말한다. 언젠가 봤던 일본 만화 <기생수>를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자발적으로 사육되고 받쳐지는 제물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거대한 인간은 정말 무시무시했다. 인간이 무모하게 도달하려는 꿈의 실체를 보는 듯해서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에 절망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클라이브 바커의 작품을 한마디로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잘 몰랐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을 보고 금방 정의 내릴 수 있었다. 공포의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작품. 인육을 나르는 뉴욕의 지하를 달리는 인육 열차라든가, 사람들을 모아 하나의 거대한 거인으로 만든다든가 하는 일은 괴기스러움마저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고 우리가 문명이라고 이룬 세계가 어쩌면 그가 말하는 괴기스럽고 피에 물든 세계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뉴욕의 마천루 WTC빌딩이 무너졌을 때 그 안에서 사라진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의 작품 <언덕에,도시가>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공포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읽기 불편하지 않은 지도 모르겠다. 팀 버튼과는 다른 현실적 공포와 괴기가 그의 작품에는 있다. 내가 선호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그의 작품은 뛰어나다는 생각이 든다.  

클라이브 바커가 주는 공포는 대단히 은밀하다. 생각하면 할수록 오싹하게 만든다. 어떤 작품은 읽을 때는 무섭다가도 책을 덮으면 하나도 생각이 안 나기도 하는데 클라이브 바커의 작품은 정반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섬뜩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은 단순한 공포를 주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에서 오는 근본적인 내면적 공포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인간과 인간이 만든 문명에서 오는, 그러면서 우리가 미쳐 느끼지 못한 관점의 공포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공포를 넘어 걱정을 가져다준다. 이 잭에서 말하는 피란 우리도 모르게 흘리는 문명과 인간 멸망의 피가 아닐지. 그래서 걱정이 되는 것이다.

작품들 모두 '인간이란'을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어쩌면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모르게 사육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가 알겠는가, 진실을.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뉴욕이 아닌 서울의 지하철도 우리가 모를 뿐 어딘 가로 밤마다 향하고 있는지. 우리의 63빌딩이 착시 현상에 의해 빌딩처럼 보일 뿐 사실은 인간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거인일지. 다만 우리가 알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으.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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