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땅 캐드펠 시리즈 17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북하우스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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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에 이런 말이 있다. 父兮生我, 母兮鞠我, 哀哀父母, 生我 勞, 欲報深恩, 昊天罔極. 아버지는 날 낳으시고 어머니는 날 기르시니, 슬프다 부모여! 나를 낳으시기에 애쓰시고 수고하셨도다. 깊은 은혜를 갚고자 하나 넓은 하늘은 참으로 가이 없다. 이 말이 떠오르는 작품이다. 캐드펠 시리즈는 추리 소설이고 수도원을 배경으로 기독교적 교리와 서양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종교나 문화를 떠나 인간이 사는 곳에서는 언제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 법이라 공감대를 형성하게 만든다.   

수도원의 땅이 된 도공의 땅이라고 일컬어지는 땅에서 발견된 죽어 비밀리에 매장된 여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하지만 그 여자가 누구인지 알려줄 단서는 하나도 없다. 단지 그 땅에서 홀연히 사라진 한 여자일 거라는 추측, 즉 그 시체는 도공이었다가 그녀를 버리고 수사가 된 신앙심 깊은 루알드 수사의 아내 제네리스라는 의견이 지배적이고 그 이유로 루알드 수사는 의심을 받는다. 하지만 수련 수사였던 술리안에 의해 제네리스가 살아 았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또한 그는 그 땅의 영주의 아들이기도 했다. 그렇게 다시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캐드펠 수사와 행정 장관 휴 버링가는 죽은 여자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술리안은 부모의 명예와 집안의 명예를 위해 기꺼이 죄를 뒤집어 쓸 생각을 한다.   

부모가 아니었다면, 자식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부모와 자식이란 인연으로 만나 그것을 어떤 도덕적 의무로, 책임으로, 명예로, 우리가 알고 있는 애정과 효란 이름으로 서로 나눠 가진 무엇 때문에 죽음으로도 그것을 행하게 하고 막을 수 없게 하는 것.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보편적이고 가장 우선되는 가치관 아닐까.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이런 것을 잊고 살지만 캐드펠 시리즈를 읽으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가 사는 동안 지켜야 하는 것은 존재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혹자들은 다소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평하지만 끝까지 내가 읽는 이유다. 어쩌면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도 이렇게 재미없고 지루해 잊고 놓치기 쉬운 것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인간은 인간의 원초적인 생활이나 도덕보다 종교적 신앙을 더 우선한다. 현대 사회에서도 그러니 중세 유럽에서는 절대적이었을 것이다. 사랑으로 결혼해서 남편만 바라보고 산 여자가 어느 날 남편을 종교에 빼앗긴다. 그러면서 이혼을 인정하지 않는 법 때문에 재혼할 수도 없고 그저 혼자 살게 된다. 마지막에 남자는 여자가 수도원에 묻힌 것도 하느님의 뜻이라고 말한다. 그야 남자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니 자기 좋은 일을 한 것이지만 그녀가 죽어서 과연 수도원에 묻힌 것을 달가워할지는 의문이다. 물론 비참하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런 면에서 보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고통을 기꺼이 참아 내고 죽음이 올 때까지 의연하게 살고자 하는 또 다른 여자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삶이란 너무도 불가해하고 너무도 이기적이고 너무도 불공평한 것이다. 누구든 개개인에게 삶이란 이처럼 너무도 버거운 것이라 언제든지 벗어버리고 싶은 무거운 외투처럼 생각된다. 그래서 누구는 신의 부름이라는 명목 하에 속세를 떠나 성직자의 길을 간다. 자신의 아내가 어떻게 생각하든지, 남아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매정하게 더 높고 위대한 일을 한다는 저만의 이유로 아내를 버린다. 남은 아내는 떠난 남편을 저주하다 다른 사랑을 찾게 된다. 그 사랑이 비록 남의 사랑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아내가 어떤 고통을 받는지 알고 있다 할지라도 이번 사랑은 놓치고 싶지 않다는 화풀이 또는 욕심을 부리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종적을 감추게 되고 그녀의 시체를 캐드펠은 발견하게 된다. 어린 아들이 있다. 그 아들은 성직자가 될 결심을 하고 수도원에 들어갔지만 전쟁으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자청해서 살인을 고한다. 누구도 그가 했으리라고 믿지 않는 살인. 왜냐하면 그의 명예롭게 죽은 아버지나 병으로 고생하는 어머니가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제목은 도공의 땅이다. 하지만 욕망의 땅이라는 이름이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종교적 욕망으로 아내를 버린 남자의 욕망. 남편을 놔줄 수 없어 몸부림치던 여자의 욕망. 병든 아내를 두고 다른 사랑을 찾은 원초적 욕망. 병든 몸으로라도 자신의 남편을 놓아줄 수 없는 여자의 욕망. 그 모든 욕망이 살인자 없는 죽음을 낳고 한 젊은이를 고뇌하게 만들었으니 인간이 사는 곳 자체가 욕망의 땅이 아닐런지.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종교적 믿음도 인간의 한낱 욕망에 지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 이 책은 종교를 떠나 인간이라는 이름의 우리들에게, 우리들의 삶에 어떤 단순하면서도 완벽한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캐드펠 시리즈가 좋다. 늘 캐드펠 시리즈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작품의 추리 소설적으로 약간 미약한 점을 인간 내면의 성찰과 드물게 진지한 교육적 내용으로 감싸고 있는 놀라운 힘을 배우게 된다. 우리가 예전에 가치관으로 삼았지만 지금은 잃어버리고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않는 고전적인 이야기들이 이 작품 안에 녹아 있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점을 항상 생각하게 하고 자신의 위치를 뒤돌아보고 반성하게 하는 대단히 좋은 작품이다. 이 시리즈를 매년 읽게 되고 기다려지는 것이 요즘 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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