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아래아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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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가운데 늘 죄를 짓고 사는 중생들이다. 그 죄는 법으로도 신판 받지 않고, 양심에도 거리끼지 않는 그런 너무도 무서운 죄다. 이 작품은 그런 우리의 죄를 고발하는 작품이다. 전직 법조인들의 모의 재판 놀이에 참가하게 된 평범한 시민. 그는 그곳에서 밤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건 계획적으로 의도된 놀라운 완전범죄였다. 그가 의식하지 못했을 뿐. 그래서 시민은 사형을 선도 받는다.

읽으면서 시민이 자신의 무의식적인 죄를 부끄러워하고 뉘우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대단한 업적을 남긴 것처럼 기뻐했고 그 기쁜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려는 듯 자살로 그 행복한 가운데 생을 마감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희극말했다. 정말 끔찍한 희극이다. 우리가 이런 존재라는 사실이 슬프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이나 정의, 선 같은 것은 만들어진 허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가치관도 인간이 만든 것이니 환상적인 껍데기에 불과하지 않을까. 정말 이렇게 적나라한 글을 쓸 수 있다니 뒤렌마트는 놀라운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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