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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지은 남자 ㅣ 발란데르 시리즈
헤닝 만켈 지음, 권혁준 옮김 / 좋은책만들기 / 2001년 8월
평점 :
절판
범죄의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수사관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때로는 명확한 범죄임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입증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범죄자가 단순한 인물이 아니라 거대한 조직이거나. 국가나 사회의 기반을 흔들 수 있을 정도의 인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 작품은 발란더라는 한 경찰관이 범죄의 사실을 인지하고 그 범죄의 증거를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는 곧 용의자를 찾아내지만 접근하기 어려움을 느낀다. 그 용의자는 누구나 인정하는 사회의 중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사람을 “비단옷의 기사들”이라고 표현한다. 어릴적 아버지의 그림을 사 가던 비단옷을 입고 미국차를 몰던 사람들. 발란더는 그들을 동경하고 커서 그런 사람이 될 것을 다짐하지만 결국 그들은 어린 아이 눈을 속일 정도의 사람들이었고 결코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사회의 영향력 있는 저명인사들중에 이런 비단 옷의 기사들이 숨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여지는 모습은 동경과 존경의 대상이지만 한 꺼풀 벗겨 보면 범죄자나 다름없는 인간의 추한 모습을 숨기고 있다고. 그는 그런 사람들에게 비굴할 정도로 굽실거리는 상관과 자신도 그와 닮아 가고 있음을 역겨워한다.
한 변호사의 죽음과 발란더의 친구인 그의 아들의 죽음, 변호사의 비서에 대한 위협과 발란더에 대한 위협...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따라가다 한 남자의 추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언제나 미소를 짓고 있는 여유로운 모습의 한 남자를...
언제나 새로운 작가와 새로운 형사를 만나는 것은 기쁜 일이다. 스웨덴 작가인 헤닝 만켈의 작품은 처음 읽는다. 스웨덴 작가 헤닝 만켈의 작품은 우리 나라에 <다섯번째 여자>가 이미 소개되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을 먼저 읽은 것은 참 다행이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이 <다섯 번째 여자>보다 먼저 나온 작품이기 때문이다.
헤닝 만켈의 형사 쿠르트 발란더 시리즈는 내가 보고 싶은 매트 스커더 시리즈의 대체물 같은 위안을 준다. 어쨌든 발란더 시리즈가 전 작품 번역되기를 바란다.
이 책을 잃으면서 우리 나라에 만연된 고위층, 지식인층, 지배층의 도덕 불감증에 대해 생각해 봤다. 이 작품의 미소지은 남자처럼 그들의 죄를 힘없고 약한 대중들은 단죄할 수 없지 않을까 불안해졌다. 우리에게 발란더같은 형사가 있을까... 아니 그의 상관 같은 가진 자에게 아부하는 형사가 더 많지 않을까... 정말 남의 일이 아닌 가슴 뜨끔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단순히 범인 찾기 위주의 추리 소설이 아니다. 이제 그런 추리 소설은 더 이상 찾기 힘든 상황이다. 그것보다는 사회 문제의 고발, 범인이 아닌 문제 찾기에 중점을 두고 읽어야 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작품이었다.
그의 작품에서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와 같은 경찰 소설의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발란더라는 인물은 모든 것을 혼자 처리하는 인물이지만 돈키호테같은 그의 모습이 이 작품의 재미를 더해 준다. 그의 고뇌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그를 통해 보는 스웨덴의 이국적 모습도 신선한 느낌을 준다. 최근 나온 추리 소설 가운데 모처럼 괜찮은 작품을 읽은 기분이다. 대단히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