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1
마크 올세이커 지음, 공경희 옮김 / 김영사 / 1995년 10월
평점 :
절판


이런 이야기들을 가끔 듣는다. 살인자가 기증한 장기를 이식한 사람들이 전에는 하지 않던 행동을 한다던가, 그 살인자의 행동을 보여주기도 한다는 조금은 오싹한 이야기... 이 작품의 주요 핵심은 이것이다. 연쇄 살인범이 붙잡힌 지 몇 달이 지나 그와 유사한 범죄가 발생한다. 형사는 그 연쇄 살인범을 범인으로 지목하지만 그는 이미 교도소에서 자살한 뒤였다. 그러자 형사는 그의 동생으로 유명한 신경외과 전문의를 지목한다. 같은 피를 이어받았으니까... 하지만 그는 완강히 그 사실을 부인하고 형사에게 자신의 유일한 죄를 오프더 레코드로 밝힌다. 자신이 형의 뇌를 환자 세 명에게 이식했다는 사실을...
사실 처음 1권은 별 흥미를 끌지 못했다. 마치 패트리샤 콘웰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연쇄 살인범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2권에 들어서자마자 급진전하기 시작한 작품은 더 심오해지고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과학과 윤리는 진전 공존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한다. 만약 닉이 네오 램시의 뇌를 환자들에게 이식하지 않았다면 이런 연쇄 살인이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학자가 이런 실험을 하지 않는다면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이, 병이 들어 어떻게 할 수 없이 죽어 갈 수밖에 없는 많은 환자들을 살릴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명백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이유 없이 살해된 사람들에게는 어떤 변명도 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샌디와 닉이 고뇌하던 부분이 아마도 이 부분이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의학 스릴러였다.
우리 뇌의 경계는 어디까질까. 만약 나의 대부분의 뇌와 약간의 살인자의 뇌가 합쳐진다면 그것은 나의 뇌일까, 살인자의 뇌일까... 또 어떤 행동을 할 경우 대다수를 차지하는 나의 뇌가 명령을 내릴까, 아니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 살인자의 뇌가 명령을 내릴까... 의사가 살릴 수 있을지 모르는 방법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이 비윤리적이기 때문에 환자가 죽어 가는 것을 바라보기만 한다면 그 의사는 윤리적인가, 비윤리적인가... 이식하는 장기가 살인자의 것이라면 과연 이식을 해야 할까, 하지 않아야 할까... 우리는 어떤 것도 명백히 알 수 없고 어떤 것도 명백히 옳다거나 그르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대단히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어떤 의학 스릴러는 읽고 나면 불쾌해지고 섬뜩한 느낌을 주는데 이 작품은 작품 속의 한 마디를 계속 떠올리게 한다.
'천국과 지상에는 자네가 철학 속에서 꿈꾸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있다네, 호라티오.'
결국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보다는 더 많은 것이 공존하고 그것들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문제를 제시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옳고 그름을 따지기도 하고 그것을 무시하기도 하면서 결국은 따라가게 되지 않을까...

p91

우리 모두 진실의 순간에 직면한다. 삶과 관계없는 것들이 한쪽으로 제쳐질 때. 무엇을 믿을지, 무엇이 존재한다고 믿을지 결정하려고 안으로 들어가 가능한 한 깊은 곳에 닿아야 할 때. 그리고 그런 순간이 오면, 우리는 오염되거나 불순한 것 때문에 일이 망쳐지지 않기를 바란다. 경찰관으로서 우리는 진실과 정의를 믿어야 한다. 하지만 때때로 정의는 살그머니 빠져나가고, 진실은 이리저리 움직인다. 우린 최선을 다해 선책을 한다. 그리고 선택한 순간부터는 그 결과를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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