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
딕 프랜시스 / 미래세대 / 1993년 1월
평점 :
품절



우리 나라에 번역된 딕 프랜시스의 작품 중에 가장 걸작에 꼽히는 작품이다. 전직 경마 기수이자 사고로 왼 팔을 다친 경마 전문 사립 탐정 시드가 등장하는 작품은 세 작품이다. 1965년 작품인 'Odds Against', 1979년 작품인 이 작품 'Whip Hand', 1995년 작품인 'Come to Grief'가 전부다. 개인적인 소망이라면 이 작품 전부가 출판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시드는 전직 경마 기수로 낙마와 사고로 왼손을 잃고 의수를 단 채 경마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탐정으로 살아간다. 그는 세 가지 사건을 거의 동시에 의뢰 받는다. 첫 번째 의뢰는 자신의 마구간에서 우수한 말들이 이유 없이 레이스에서 꼴찌를 하는 이유를 밝혀 달라는 것이었고, 두 번째 의뢰는 전처가 사기꾼에게 말려들어 감옥에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사기꾼을 찾아 달라는 전 장인의 의뢰였다. 마지막 의뢰는 재키 클럽이라는 경마 협회의 보안 대장이 신디케이트에 부정이 있고 그 부정에 자신들 보안 요원이 협조하고 있는 것 같으니 조사해 달라는 것이었다. 

시드는 전처의 사건만 빼고 두 사건에서 손을 대자마자 위협을 받는다. 한 남자는 시드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며 성한 오른손마저 못쓰게 만들겠다고 협박하고 또 다른 남자는 깡패를 동원해서 위협한다. 시드는 그런 협박에 처음에는 굴복한다. 하지만 일은 그가 굴복하고 있도록 놔두지 않는다. 결국 시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얼마간의 자존심을 회복한다. 

전직 경마 선수, 왼쪽 팔이 의수인 장애인, 경마 전문 탐정, 이혼남. 그를 구성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보다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그의 성격은 누구도 굴복시킬 수 없는 의지다. 부정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이것을 두려워해서 그를 미리 협박하기도 한다. 그의 전처는 그의 그런 성격을 증오한다. 하지만 그는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다.

한 팔로 살아가고 어느 정도 그것에 익숙해진 사람에게 성한 팔마저 못쓰게 하겠다는 위협은 잔인한 것이다. 인간은 한번의 시련은 어떻게든지 이겨낼 힘이 있다. 처음 당하는 것이고 한번의 포기는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또다시 그런 일이 반복된다면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인간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것은 두려움이고 공포다. 차라리 삶을 포기하는 게 낫겠다고 여기게 하니까. 하지만 그런 협박에 굴복해 일을 회피했다는 것은 탐정으로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것 또한 인간 자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 어떤 것이 더 크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모두가 인간을 동시에 구성하는 것이므로.

딕 프랜시스는 탐정을 쓰는 작가가 아니다. 그래서 약간 아마추어적인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귀향>에서는 고급 공무원이 탐정으로 등장했고, <경마장의 비밀>에서는 건축가가 탐정으로 나왔다. 그래서 어딘가 불완전한 추리소설을 읽는 느낌을 주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정말 진짜 대단한 탐정이 등장한다. 이 한편이 딕 프랜시스의 그 동안의 편견을 없애 주었다.  

세 사건을 거의 동시에 의뢰 받은 시드. 그리고 그를 위협하는 무리들. 오른 팔만으로 그는 도와주는 사람 없이 사건을 해결한다. 비정한 사회의 축소판인 경마를 둘러싼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으로 하드보일드의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지금까지 출판된 딕 프랜시스의 작품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 후 다른 작품도 선보일 계획이라고 하지만 그 작품을 보기 전에 이 작품으로 딕 프랜시스의 색다른 추리 소설을 음미하시길. 또한 독특한 이력을 가진 탐정을 만난다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 되리라 생각된다. 

이 작품은 대쉴 해미트, 레이몬드 챈들러의 계보를 잇는 정통 하드보일드 작품이다. 대쉬 해미트가 하드보일드를 창시했을 때 미국인들은 영국에 빼앗긴 추리 소설의 자존심을 찾았다고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다시 딕 프랜시스의 이 작품으로 영국으로 돌아온 느낌을 준다. 왜냐하면 미국에는 그 후에 그리고 이 작품 이전에는 정통 하드보일드 작품을 찾아보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딕 프랜시스의 <Whip Hand>가 가장 좋은 정통 추리 소설의 묘미와 정통 하드보일드의 매력을 동시에 간직한 작품이 아닌가 생각한다. 너무 좋은 작품이었다. 번역에 미흡한 면이 있었지만 작품이 워낙 좋아 그런 미비한 점은 넘어가도 좋을 정도였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작품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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