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루인 수사의 고백 캐드펠 시리즈 15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북하우스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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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모든 삶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종교적으로 볼 때 기독교에서는 그것을 하느님의 계시로 받아들이고, 불교에서는 인연과 업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할루인 수사! 그의 인생에도 원인과 결과가 있다. 그가 더 높은 주인의 가문으로 회계 수업을 받으러 간 것이 첫 원인이다. 그로 인해 사랑이 싹트고, 증오가 싹트고, 음모가 싹트고, 고통이 싹튼 결과를 낳았다. 두 번째 원인은 그가 지붕에서 떨어져 죽음의 문턱까지 간 것이다. 그것으로 그는 참회의 고행을 결심한다. 그 고행으로 묵은 상처가 벌어지는 결과가 발생한다. 하지만 모든 원인과 결과가 불행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인간사의 모든 일들은 새옹지마로 연결되는 법이니까.  

무덤까지 들어갔다고 생각한 죄가 우연한 일로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이번 캐드펠 시리즈 열 다섯 번째 작품이 바로 그런 경우다. 언제나 모든 일에 열심이고 마치 고행을 하듯 생활하던 할루인 수사가 지붕을 고치다 떨어져 죽음의 문턱까지 가게 된다. 그는 자신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죄를 고백 성사한다. 하지만 그는 살아 남았다. 그는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자 지난날을 지냈던 영지로 순례를 떠난다.  

할루인은 젊은 날 한 여인과 사랑했으나 이루어지지 못하고 그녀는 그의 아이를 갖은 채 죽었다. 자신이 직접 그녀의 어머니에게 전해 준 낙태를 하는 약을 먹고서. 할루인은 그녀의 어머니에게 지난날을 용서받고 그녀의 무덤에서 하룻밤 밤샘 기도를 하고 떠난다. 도중 눈보라를 만나 할루인 수사와 캐드펠 수사는 어느 저택에 신세를 지게 된다. 그곳에서 할루인은 그의 젊은 날처럼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고뇌하는 젊은이들을 만난다. 반강제적으로 결혼을 하게 된 전날 저녁 신부의 유모는 어디론가 길을 떠나고 시체가 되어 길에 누워 발견된다.  

한 수사가 죽음의 문턱에서 고해성사를 한다. 그는 죄의 대가로 아픈 몸을 이끌고 고행의 순례를 결심한다. 그 길에 캐드펠이 동행을 한다. 그 고행길은 한 여인의 죽음을 초래하고 한 쌍의 젊은 남녀의 미래를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참회의 고행길이 침묵하고 싶은 누군가에게는 말문을 열어 새로운 참회의 기회를 준다. 그것은 어쩌면 신의 계시로 이루어진 길인지도 모른다. 한 여인의 사악한 거짓말이 낳은 비극이 그 다음 세대에서는 해피엔딩을 열어 주게 된다.  

세월을 앞서 가는 사람들이 앞서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의 잘못을 생각해서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좀 더 나은 길을 알려주기 위한 것은 아닐까. 세상에 종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함이 아닐까. 책이 존재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에게 행복과 작은 깨달음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닐까. 캐드펠 시리즈는 이런 모든 의문을 충족시켜 주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벌어진 상처는 한 사람의 죽음을 가져오지만 그의 죽음으로 불행해질 뻔한 한 쌍의 젊은이들이 행복을 찾게 된다. 마지막 결과가 좋으므로 해서 그 동안의 고통은 사라지게 되고 차선책으로 받아들인 일도 최선으로 생각하게 된다.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은 그래서 일어날 만 한 것으로 여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캐드펠 시리즈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이 작품을 보면서 불교의 인연에 대해 생각했다. 인연이란 억지로 만들 수도 없는 것이고 인간의 힘으로 떼어 낼 수도 없는 것이라고.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어긋난 인연이었던 것이 그 어긋난 인연으로 누군가에게는 축복이 되기도 하는가 보다. 그러니 어떤 것도 진정으로 좋다, 나쁘다 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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