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몸값 캐드펠 시리즈 9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북하우스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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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루에도 열 두 번을 더 머리 속으로 생각하곤 한다. 저 인간이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 그 인간은 죽지도 않다니. 살인을 생각만으로 저지를 수 있는 거라면 세상에 누구도 살인자가 될 수 있고 누구도 살해당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다. 죄는 무겁고 죄지은 자는 용서할 수 없지만 살인의 대가를 사형으로 마무리지을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 것인지.  

여기 너무도 사랑해서 어찌할 수 없는 비참한 상황에 이른 사람이 있다. 우린 살면서 한번쯤은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렇다고 누구나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런 유혹을 받고 고통스러워하기는 한다. 사는 것과, 죽는 것, 선하게 사는 것과 악행을 저지르는 일이, 자신이 사람인 것조차 아무 상관없을 만큼 누군가를 고통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우리가 단죄할 수는 없는 일 아닐까.  

누군가를 너무 사랑하면 가끔 그 사랑으로 제 목을 조일 때가 있다. 사랑은 너무 신성하고 그 만큼 잔인하다. 남자들은 가끔 우정이냐 사랑이냐 하면서 따지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진짜 이런 경우를 당한다면 선뜻 어떤 것도 선택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작품이 이런 경우다.

형제처럼 자란 사촌, 마치 한 몸처럼 어울려 다닌 두 사람. 그만큼의 깊이로 사촌의 약혼녀를 사랑하게 되고 외면하려 하지만 사랑은 그렇게 쉽게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고뇌하는 남자. 그때 사촌은 전쟁에 참가해서 포로가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 걸림돌은 단 한가지. 그것만 제거되면 사랑은 너무 쉽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잠시 이성을 잃는다. 순간적으로 일은 벌어지고 그는 사랑을 얻기 위해 너무 큰 죄를 짓고 만다.  

캐드펠 시리즈의 이 작품은 다분히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지만 중세에서는 당연시 여겼던 피에는 피로, 죄에는 벌로 하는 식의 논리가 여전히 현대에도 적용됨을 알려준다. 사랑을 이루기 위해 사랑을 반대하는 사람을 제거한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생각해 보는 일일 것이다. 죽은 자의 몸값은 과연 얼마인가, 어떻게 매겨야 하나. 12세기 사람들의 가치관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캐드펠 시리즈는 언제나 교훈적이지만 특히 이 작품은 시사적이기도 하다. 우발적으로 살인이라는 범죄를 저지른 죄인을 다시 사형이라는 법률에 의한 법으로 살인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제목이 시사하듯 살해당한 자의 몸값은 어떤 방법으로 받아 내야만 하는 것일까. 꼭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목숨에는 목숨으로여야만 하는 것일까. 이미 살해당한 자가 죽어 가는 상태고 살아난다면 어떤 사람들이 심각한 상태에 빠질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살인이라는 범죄가 절대 어떤 이유로라도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것 또한 절대적인 것이다.  

사형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의 심정을 이 책은 대변하고 있다. 우리가 만든 생명이 아니고 죽은 자의 몸값을 꼭 목숨으로 받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허준이 그 시대에 무고한 인명을 살해했다고 치자. 그래서 그의 목숨을 앗았다면 우리는 지금 얼마나 땅을 치고 후회할 것인가. 관용과 용서와 화해와 이해, 속죄와 봉사라는 사람이 살아가는 덕목이 존재하고 우리가 그것을 진리처럼 믿고 실천하는 한 사형이라는 벌이 필요한 것인지 끝없이 생각해 볼 문제다. 

요즘 많은 나라에서는 점차적으로 사형 제도의 폐지가 추진되고 있다. 유럽 연합은 대다수 나라 사형 폐지를 법제화시킨 상태다. 하지만 범죄에도 특정 범죄 가중 처벌이라는 것이 있다. 같은 죄라 할지라도 같은 벌로 다루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발적 살인과 계획한 잔인한 살인, 한번 저지른 살인과 연쇄 살인은 다르게 처벌해야 한다. 이해와 용서와 관용이라는 단어 아래서 우리는 이 문제를 심사숙고해서 좋은 결론을 내렸으면 좋겠다. 벌이 엄하고 무거울수록 범죄를 저지르는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이 책이 모든 해결책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참고할 수는 있으리라 생각된다.

저 사람만 없었으면. 저 사람만 아니었으면. 그리고 그 사람이 어차피 죽을 사람이라면 순간적으로 어떤 일을 저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발적 살인이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죄를 어떻게 벌할 것인가. 목숨에는 목숨으로? 아니면 정상을 참작하여? 아니면 평생 죄책감을 가지고 살도록 내버려둔다? 이 작품에서는 어떤 선택을 했을 지 읽어보기 바란다. 사랑과 재미와 감동과 인생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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