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의 참새 캐드펠 시리즈 7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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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윈은 떠돌이 음유시인이다. 마을의 금세공장인인 소문난 구두쇠 월터 오리파버의 아들 대니얼의 결혼에 그의 재주를 보여주다가 주전자를 깨트리고 쫓겨난다. 그가 쫓겨나고 얼마 후 지참금을 금고에 넣던 월터가 머리를 맞고 쓰러진 것을 딸 수잔나가 발견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릴리윈을 범인으로 단정하고 그를 쫓는다. 쫓겨서 달아나던 릴리윈은 수도원으로 뛰어 들고 수도원의 법에 따라 40일간의 유예기간을 얻는다. 그를 치료하던 케드펠은 릴리윈이 억울함을 호소하자 그의 진실성을 믿고 조사를 시작한다.  

오리파버 집안의 하녀 래니트는 릴리윈이 범인이 아니라고 믿는 마을의 유일한 사람이다. 사랑은 그렇게 가난한 마음을 위로하며 시작된다. 빨래를 하던 날 수잔나는 래니트에게 릴리윈을 찾아가도록 휴가를 준다. 릴리윈은 밤늦게 래니트를 바래다주기 위해 위험을 각오하고 수도원을 빠져 나온다. 그리고 다음날 오리파버 집에 세 들어 살던 자물쇠장인이 죽은 채 강가에서 발견된다.  

캐드펠 시리즈는 가난하고 힘이 없지만 정직한 사람들 위주로 사건이 구성된다. 법과 정의나 종교의 힘이 자칫 소외될 사람들을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농노나, 나병환자, 떠돌이 음유시인, 하녀라 할지라도 그들이 억울하게 당하도록 놔두지는 않는다. 이 작품에서는 떠돌이 음유시인 릴리윈이 살인범으로 몰리자 수도원은 그를 보호하고 캐드펠은 진상을 조사하고, 하녀 래니트가 인질로 잡히자 그녀를 구하기 위해 휴 버링가는 노력을 다한다. 어찌 보면 아무 상관하지 않아도 말이 없을 사람들인데 그들은 그들을 모른 척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정의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어떠한 사람이 살인자가 되는가보다는 어떻게 살인을 하게 되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가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이다. 그리고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다. 중세 사회에서 가장 중요시되었던 것도 가문이었다. 부모가 어떤 사람이냐가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였으니까. 그런 시대에 살면서 가족에게 이용만 당하고 방치된다는 것은 사람을 악하게도 만들 수 있다. 그것은 지금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가 범죄자가 될 확률이 더 높다는 통계도 있으니까.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부모에게 버림받고도 인간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지 배우지 않아도 실천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대비되는 인물을 통해 중세 영국을 들여다보는 것은 무척 재미있는 일이었다.   

억눌린 욕망은 언제나 분출될 출구를 찾아 헤맨다. 그 욕망이 자신의 가까운 사람이나, 가족에 의해 형성된 거라면 그것은 더욱 끔찍한 형태로 발전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따뜻하고 다정하게 서로를 돌보고 위로하고 걱정거리를 서로 나누며 함께 사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아래서. 누군가는 가족이 그냥 생기는 줄 안다. 화목한 가정이 아무런 노력 없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쉽게 단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착각이다. 그런 아름다운 구성을 이루기 위해 그들은 서로에게 배려하고 끊임없이 양보한다.  

숨을 쉬는 것만으로 주변의 공기를 달콤하게 할 수 있는 가. 그것은 달콤한 향기를 서로 끊임없이 내뿜었을 때 어느 한순간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그것은 어른들이 해야할 몫이다. 가족을 구성한 사람의 책임이고 의무이다. 그걸 소홀히 했을 때 나타나는 부정적인 반응들은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려야 마땅하다. 어떤 것도 아이들의 책임이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그 어른들을 따라할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아주 착하게 태어난 아이는 어른의 가르침이나 보살핌 없이도 아름답게 자란다. 우리는 그들을 천사라 부른다. 하느님께서 지극히 돌보시는 작은 천사. 이 작품을 읽으면 모두 착한 천사를 만날 수 있다.

세상엔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이 많이 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쫓기는 사람, 학대를 당하는 자식, 힘이 없어 항변할 수 없는 사람, 그리고 서로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마땅히 보호하고 있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의문이 생기고 반성하게 되지만 안타까운 것은 우리의 사회가 여전히 중세 사회만도 못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여전히 억울한 사람들 천지고 아버지들은 여전히 자식들에게 군림하려고 한다.  

정말로 살 만한 세상은 요원한 것인지 답답하다. 우리에게는 캐드펠같은 정의롭고 이해심 많은 아버지가 언제 나타날까. 휴 버링가와 같은 현명한 정치가는 언제 나타날까. 아니 우리 앞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우리 자신들이 과연 그들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인지 그것도 의문이다. 

캐드펠 시리즈는 잔소리하는 작품이 아니다. 도덕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작품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12세기나 21세기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이 작품들은 청소년 권장도서로도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고 좋은 작품을 만나기란 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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