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 축일장 캐드펠 시리즈 4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북하우스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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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개인의 발전의 원천은 장사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전쟁으로도 막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이 사는 동안은 잘 살고 싶은 게 사람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어떤 어려운 시대에도 사람은 산다고 했던가. 히틀러의 나찌시대에도 사람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행복을 노래하며 별일 아니라는 듯이 살았다고 하던데 사람이란 그런 존재인가 보다.  

나라가 둘로 갈라지고 전쟁을 겪고, 앞으로 전쟁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축일장을 열고 장사치를 불러모아 돈을 벌어들인다. 그들은 장에 제각각의 이유로 모이고 서로 다른 이가 왕이 되기 원하는 첩자들은 북적대는 장터에서 접선을 하려한다. 그때 살인이 일어나고 캐드펠이 사건에 개입한다.  

시루즈베리 시에 매년 성 베드로 축일장이 열린다. 사람들이 각지에서 모여든다. 이때를 틈타 왕의 첩자들이, 혹은 황후의 첩자들이 각각 만나기로 한다. 그 사이에 어떤 무리는 명예가 아닌 돈만을 목적으로 그들을 노린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각각의 상대에게 돈을 받고 팔 목적인 것이다. 그리하여 한 사람이 죽음을 당하고 그가 가진 정보를 찾으려고 혈안이 된 사람이 나온다. 그리고 그것을 목숨걸고 지키려는 사람도. 

시대는 두 편으로 나뉘어 누군가는 그 한쪽 편에 속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런 때다. 그런 때 축일장은 양쪽의 스파이들이 저마다 자기편과의 접촉을 시도하기 좋은 장소일 것이다. 그것은 또한 상대방이 그런 점을 알고 있을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그리하여 한 상인이 살해당한다. 범인은 물론 상대편이겠지만 문제는 누가 상대편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고 또 다른 남자가 그 여자를 사랑하는 일이 벌어진다. 한 남자는 잘생긴 귀족이고 다른 한 남자는 장인의 아들이다. 여자의 선택은 그런 면에서 당연했다. 아버지를 여의고 자신을 의탁하기에는 보잘것없는 평민의 아들보다는 귀족이 훨씬 좋은 것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진실일까? 이런 수상한 시절에 누구나 진실 한 두개 정도는 감추고 다니는 것 아닐까. 물론 그것을 밝히는 것은 캐드펠 수사 같은 나이 많은 사람들의 몫이겠지만.  

캐드펠은 성직자이나 문제를 종교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사람의 사정을 살피는 인간적인 수사다. 집행관 휴 버링가는 공평한 관리로 묘사되어 캐드펠과 함께 사건을 해결한다. 이곳에 나오는 사람들은 요즘도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권력을 잡으려는 자, 전쟁을 막으려 애쓰는 자, 그 전쟁으로 자신의 이득만을 취하려는 자, 사랑에 눈먼 자, 영리한 여자. 모든 인물이 살아 숨을 쉰다. 모처럼 엘리스 피터스의 진가를 목격하게 된 것 같아 즐겁다.  

이 작품에는 낭만적 로맨스와 뒤마의 <삼총사>와 같은 분위기가 담겨 있다. 말하자면 한 여인에 대한 젊은이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왕과 여왕의 전쟁 사이에서 첩보 활동을 하는 시민들의 목숨을 건 위험한 승부가 등장한다. 그리고 조금 마음에 안 들지만 언제나 존재하는 어리석은 여인도. 우리로 말하면 장날의 풍경과 그 속에 사는 마을 사람들, 그런 중세적 분위기 속에 서 벌어지는 접선, 의문의 죽음을 캐는 한 수도사의 모습과 그 가운데 피어나는 사랑이라니 안 읽고는 못 배기는 작품으로 말하자면 캐드펠 시리즈의 백미라고 할 만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이라면 항상 수도원과 시루즈베리 마을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거의 같다는 것이다. 마치 진짜 그 시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가끔 그곳에 들러 만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서 내가 중세 영국에 놀러 간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그런 생각만으로도 정말 재미있다. 그런 느낌 때문에 이 시리즈를 계속 읽는지도 모르겠다.

12세기 영국의 첩보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품이다. 현대의 세련된 첩보물에 비하면 밍밍한 감이 있지만 아마도 12세기에는 아주 스릴 넘치는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고 본다면 아주 재미있고 매력 넘치는 작품이다. 한번 읽으면 그 매력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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