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사의 두건 캐드펠 시리즈 3
엘리스 피터스 지음, 현준만 옮김 / 북하우스 / 199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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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시리즈 중에서 영국추리작가협회상을 탄 작품이라고 해서 제일 먼저 본 작품이다. 먼저 나를 붙잡은 것은 12세기 영국의 시루즈베리라는 지역의 성 자일즈 - 성 바울 수도원의 자세한 묘사였다.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의 생활, 캐드펠이라는 수사와 그의 조수 마크 수사, 그리고 이 작품의 줄거리의 핵심인 캐드펠과 젊은 시절 결혼할 뻔했던 여인과 그의 철없는 아들, 그리고 죽임을 당한 자와 여전히 그들 곁에 있는 살인을 한 자에 대한 동정 어린 시선이 나를 사로잡았다.    

수도원 최고의 약초 재배자이자 약물 제조자인 캐드펠 수사가 만든 독약에 의해 영주가 살해당하다니. 그것도 전재산을 수도원에 기부하려던 영주가 아닌가. 그러니 응당 캐드펠 수사가 조사를 할 수 밖에 없는 일이지만 과거와 얽혀 있으니 그도 참 이래저래 난감하게 된다. 이때 휴 버링가라도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그는 없고 대신 온화한 성품의 마크 수사가 등장한다. 이 마크 수사도 참 좋은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다.  

12세기 영국에서 아무런 재산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농노로, 자유민으로 산다는 것은. 중세 영국에서 신분과 함께 중요한 것은 재산이다. 토지나 장원 등 물질적인 것이다. 그것은 특히 남자가 살아가는 힘이 된다. 그것 없이는 노예와 마찬가지다. 누구도 노예의 신분을 좋아하지도 감수하지도 않는다. 그 시대를 산 많은 억울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 모두가 살인을 저지르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가, 제도가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사건을 조장하고 거기에 휘말리게 되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 작품은 그런 부당하고 모순된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독자가 공감하기 쉽게 말이다.  

살인자는 두 종류가 있다. 악한 살인자가 있고 선하지만 순간의 실수로 저지르는 살인자가 있다. 전자의 경우는 논할 가치도 없지만 후자의 경우 우린 그에게 어떠한 벌을 내려야 할까. 수도사 캐드펠은 이 점에 확고하다. 법에 의해 어떤 처벌을 받기보다는 그가 저지른 죄를 어떤 형태로든 참회하고 속죄하도록 하고 있다. 물론 법률에 의한 처벌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어떠한 죄를 지었을 때 그것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속죄하는 것만큼 중요한 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결말은 뜻밖의 한없는 이해와 용서, 참회와 새로운 시작이었다. 이것보다 더 좋은 결말을 내릴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지금부터 천년전의 사회에도 있었던 이런 너그러움이 더 낫다고 생각되는 지금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 안타깝다. 지금의 사회에 필요한 것은 타인에 대한 작은 연민과 적당한 배려일텐데. 추리소설로서의 박진감 넘치는 장면이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치밀한 머리싸움이 없는 것이 단점이기는 하지만 12세기의 중세 영국의 사회상과 작가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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