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번째 주검 캐드펠 시리즈 2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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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서핑하다가 엘리스 피터스의 <99번째 주검>에 대한 이야기를 발견했다. 원작에는 95구의 시체가 나온다는 것이다. 99라는 숫자는 번역, 출판한 곳에서 의도적으로 고친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숫자는 책의 내용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들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99번째 주검은 단순하다. 잉글랜드가 두 개의 나라로 나눠져 서로 싸울 때 모드 황후를 지지하던 시루즈베리시의 성주와 귀족은 반대파인 스티븐 왕에게 함락되고 성에 있던 98명의 사람들은 교수형을 당한다. 그 와중에 누군가 살인을 하고 그것을 은폐하려고 99번째 주검으로 시체를 처리한다. 하지만 그것은 캐드펠에 의해 발각되고 캐드펠은 억울하게 살해된 자를 대신해서 살인자를 찾아 나선다. 왕과 황후의 전쟁. 황후의 영지를 점령하고 황후의 추종자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왕. 그 가운데 한 구의 시체는 왕에 의해서가 아니라 누군가 개인적인 목적으로 살해한 것이라는 사실을 캐드펠은 발견한다. 그는 비록 왕의 살인은 묵인해야하는 처지지만 또 다른 살인자는 덮어둘 수가 없었다.   

이 작품에서는 많은 살인이 일어난다. 그것은 정복자에 의한 저항 세력의 제거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이지만 역사상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고 이것은 엄격한 의미에서의 살인과는 구분되는 일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개 처형쯤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체 사이에 누군가 교묘하게 살인된 시체 한 구를 은폐시킨다. 그것은 개인의 사사로운 살인이었고 날카로운 눈을 가진 캐드펠이 그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비록 왕의 살인은 막을 수 없었지만 개인적인 살인을 저지른 자는 잡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오른다. 그때 그의 눈에 띈 사람이 앞으로도 계속 작품에 등장하게 될 휴 버링가다. 99번째 주검은 과연 누구고 휴는 이 일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남의 죄에 자신의 죄를 덮어 씌워 죄를 면하려는 자보다 더 파렴치한 자가 있을까. 기사도 정신이 살아 있고, 명예를 중요시하던 중세에 말이다. 하지만 어느 시대 건 정치적 야망을 가지고 권력을 위해 물불을 안 가리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자는 지금의 정치판과 마찬가지로 권모술수에 능하고 양심이 없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런 자 때문에 어리석게 희생양이 되는 사람이 나오고 명예로운 자가 그런 자와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결투를 벌여야 한다는 상황이 세상살이의 모순을 나타내는 것 같아 비애감을 느끼게 한다.

어떠한 죽음이 공평한 죽음인가. 전쟁에 진자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정당한가. 아니면 사리사욕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자만이 부당한 것인가. 신을 믿고 신에 의지하여 신의 가르침대로 살아간다는 믿는 자들의 자신을 옹호하기 위해 신을 팔고 그런 무모함으로 죽어간 역사 속의, 아니 현재의 사람들에게 신은 언제나 공평하며 누구에게도 자신의 권능을 대신 집행시키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억울한 죽음은 신이 있다면 밝혀질 것이고 신은 죄지은 자를 벌한 다고 믿고 싶다. 이 땅에 공정한 신이 존재한다면. 그가 인간의 마음이 아닌 신의 마음과 위엄을 갖추었다면, 세상은 언젠가 선하고 조용한 자들의 것이 되리라고 믿는다.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시리즈는 교훈적이다. 읽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살인에 대해, 전쟁에 대해, 사람이 살아가는 것에 대해, 그리고 사랑에 대해. 큰 정의를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큰 정의는 지키기가 무척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정의라도 지키려고 노력한다. 작은 정의를 지키는 일은 그것이 큰 정의를 지킬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의 작은 매력중의 하나는 탐정에게 좋은 조수가 있다는 점인데 이 작품은 중세의 셜록 홈즈 격인 혹은 포아로 격인 캐드펠 수사가 그의 왓슨, 헤이스팅스라고 하기에는 더 영향력이 큰 절대적 공권력을 발휘해서 도와주게 되는 휴 버링가를 만나게 되는 작품이다. 캐드펠의 추리는 그의 도움으로 힘을 얻는다. 그가 부재중이던 <수도사의 두건>에서 캐드펠이 그의 부재를 얼마나 안타까워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언제나 로맨스가 있고 중세의 기사도적 낭만이 있고 캐드펠식 정의가 살아 있는 이 시리즈는 정말 꼭 한번 권하고 싶은 시리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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