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의 유골 캐드펠 시리즈 1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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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영국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사람들이 살았고 사람들에게서 일어나는 일들이 있었다. '성녀의 유골'은 소박하고 평화롭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 만날 수 없는 서민의 삶이 있다. '장미의 이름'은 진지하고 너무 어려워 순진하게 손을 댄 사람들의 머리에 쥐가 나게 하지만 이 소설은 편하게 대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을 표현하고 있다.  

중세 영국의 수도원들은 한가지 일에 집착하고 있었다. 성녀의 유골을 자신들의 수도원에 모시는 일이 그것이다. 이 작품에서 그려지는 성 베드로-성 바울 수도원도 마찬가지다. 수도원의 야심만만한 로버트 부원장과 그의 심복 제롬 수사는 위니프레드 성녀의 유골을 차지하기 위해 웨일즈 지방으로 떠난다. 그들과 함께 한 사람은 웨일즈 출신의 우리들의 캐드펠 수사다. 캐드펠 수사는 그런 야망에는 마음이 동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의 관점에서 기독교를 바라보고,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키워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시루즈베리의 성 자일즈 성 바울 수도원에서 이웃 수도원에서 성녀를 발견해 모시자 수도사들이 자신들의 수도원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성녀를 모시기로 한다. 그 성녀는 위니프레드 성녀였고 그녀는 다른 마을 사람들이 소중히 모시는 분이었다. 이제 그들은 그 성녀를 뺏으러 가는 것이다. 그러니 사건이 안 일어날 수가 없겠지. 욕심 많은 부원장과 지신이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믿는 미치광이 수도사의 합작으로 살인이 발생하고 웨일즈 말을 한다는 이유로 따라나선 캐드펠 수도사가 사건의 전면에 나선다.  

문제는 웨일즈의 마을에서 위니프레드 성녀의 유골을 선뜻 내주고 싶어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간 신앙심이 비정상적인 두 수사. 한 수사는 비정상적으로 신앙에 집착하고, 또 한 수사는 수사로는 비정상적으로 속세적인 사람이다. 그들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과연 그들은 위니프레드 성녀의 유골을 수도원으로 가져갈 수 있을 것인가.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캐드펠 수사가 있는 한 아무런 사건 없이 끝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아주 재미있고 독특한 작품이다. 

캐드펠 시리즈를 보면 공통점을 알 수 있다. 사건이 있고, 애타는 사랑을 하는 연인이 있다. 그리고 캐드펠은 사건을 해결하고 사랑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는 아주 매력적인 중세의 탐정이다. 첫 작품이라 그의 조수격인 휴 버링가가 등장하지 않지만 2편서부터는 그를 만날 수 있다. 요즘 만나기 어려운 품격 있는 추리 소설이라고 생각되는 작품이다. 

요즘 추리소설에서 읽을 수 있는 서스펜스나 스릴은 없지만 아가사 크리스티의 책에서 읽을 수 있었던 추리의 묘미와 반전이 있다. 나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모든 번역된 추리소설을 읽은 후에 더 이상 그런 책을 만날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기뻤다. 아마 아기사 크리스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틀림없이 기뻐할 것이다.  

이 책에서 또 한가지 느낄 수 있는 것은 신은 인간 위에 군림하지 않으며 인간만이 인간 위에 군림하려 애쓴다는 사실이다. 또 인간이 신을 잔인하게 표현하며 그들의 욕망과 탐욕 때문에 신을 판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중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것을 중세 영국의 사람들이나 요즘의 우리들이나 잘 알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캐드펠은 인간적인 수사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인간을 위하는 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이것이 이 책이 가진 매력일 것이다. 세상에 넘치는 엽기와 잔인한 미학에 지친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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