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부제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이것은 그루누이라는 살인자의 삶과 죽음에 대해 쓰고 있다. 불행한 아이 그루누이가 냄새가 없는 불길한 아이로 태어난 것은 그의 잘못은 아니다. 그의 엄마는 매독에 걸린 매춘부였고 어쩌면 그것은 엄마의 잘못에 의해 잉태된 업이었는지 모른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엄마에 의해 살해될 위기에 처해지고 그로 인해 그의 엄마는 영아 살해 죄로 처형당한다. 냄새가 없다는 것은 형벌과도 같았다.   

살인자 그루누이! 엽기적으로 25명의 어린 소녀를 살해하고 그들의 체취로 사람의 냄새가 나는 향수를 만든 향수 만드는 천재. 갓난아이의 살 냄새, 젖 냄새는 우리를 황홀하게 한다. 그 어떤 향기보다 좋은 것이 어린아이의 살 냄새다. 그런데 그런 좋은 냄새를 풍기지 않는 아이가 태어났다. 그래서 그의 엄마는 겁이 나서 아이를 버렸다. 자라면서도 그는 아무런 냄새를 맡게 하지 못했다. 자신의 냄새를 가지지 못한 사람. 그의 불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냄새란 무엇인가. 가끔 옷안으로 코를 박고 내 살 냄새를 맡아본다. 코끝을 스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냄새가 난다. 땀 냄새 같기도 하고 어린아이 젓 살 냄새 같기도 하고 아니면 내가 맡아 왔던 추억이 기억을 더듬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아무런 냄새조차 나지 않는다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루누이에게 어린아이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는 것은 그의 엄마에게 두려움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그를 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같은 일을 되풀이 시켰다. 그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만 것이다.  

소외된 사람은 쥐스킨트의 작품을 이루는 코드다. 그루누이에게 살인은 그저 자신을 지키려는 방어본능이었는지 모른다. 사실 그루누이는 누구에게도 해를 입히고 싶지 않았다. 그저 사람들이 그를 조금만 애정을 가지고 대했다면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이란 남의 다른 점은 죽어도 인정을 못하는 족속들이다. 자신들과 비슷한 생김새를 하고 비슷한 색깔의 피부를 갖추고 비슷한 냄새를 풍겨야 비로소 동질의 사람으로 인정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살인을 해서라도 사람의 냄새를 가지고 싶은 그루누이의 마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향수는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말하고 싶은 편견의 상징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우리의 코끝을 스치는 갖가지 냄새에 얼마나 현혹되는 지 알 수 없다. 그것은 어쩌면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무기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냄새가 없다는 조금 다른 상황이 용서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지독한 편견이다. 어쩌면 편견에 대한 경고를 나타내고 있는 듯 하다. 이 책에는 그루누이라는 냄새 없는 인간 외에도 우리가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중세의 향수를 제조하는 방법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 장미향수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의 장미가 필요하며 어떤 기름을 사용해서 얼마의 향수원액을 추출할 수 있는 지하는 얘기는 호기심을 뛰어넘어 신기하기까지 하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역량이 돋보이는 대작이다. 이 책 한 권으로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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