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비지 가든
마크 밀스 지음, 강수정 옮김 / 비채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새비지 가든>, 이 작품을 다 읽고 한동안 멍하게 있었다. 재미있게 읽은 작품에 너무 몰입했다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작품은 서평 쓰기도 쉽지 않다. 아무 생각도 안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은 정말 딱 한 줄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라고 쓰고 싶어지기도 한다. 작가의 솜씨가 대단하다는 걸 우선 칭찬하고 싶다. 별 거 아닌 이야기로 눈 길을 사로잡는 능력이 뛰어나다. 처음부터 작가는 그런 능력으로 내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평범한 대학생 애덤이 논문의 주제로 지도 교수에게 한 이탈리아의 오래된 가문의 정원의 연구를 제안 받는다. 아무 생각없이 하루 하루를 게으르게 살아가고 마침 여자 친구에게 차여서 심란하던 차라 애덤은 이탈리아 피렌체로 간다. 도치 가문의 400년 전 부유한 영주가 어린 아내의 죽음을 애도해서 만든 정원이라는 곳에 발을 들이자마자 애덤은 심상치 않은 무언가를 느낀다.  

아름답고 완벽하게 대칭을 이룬 저택에 비해 어떤 알레고리가 있음을 감지한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등장한 그리스 신화를 본 따 만든 것처럼 보이는 아내를 표현한 아름다운 여인의 조각상만을 놓고 봐도 볼수록 달리 보이고 그녀의 이름을 새긴 플로라도 저택에서는 그렇게 대칭과 균형이 잘 이루어지게 했으면서 비대칭적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정원의 숨겨진 이야기에 몰두해도 모자랄 스물 한살의 젊은이 애덤에게 또 하나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저택 맨 윗 방을 잠근 사연이다. 2차 대전때 독일군에게 점령당했다는 이야기, 그들이 철수하던 날 독일군의 총에 살해당했다는 이야기, 마을 사람들 중에 그 후 파시스트와 공산주의자로 나뉘어 다시 싸움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애덤에게 또 하나의 의문을 품게 한다. 도대체 도치 가문의 죽음에는 왜 그렇게 의문이 많아야 하는 것일까? 

눈 앞에 폭력을 드러내지 않아도 애덤을 걱정하게 만들고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들고 있다. 그것은 젊은 청년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이 눈에 보이는 폭력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에 주목하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라 생각된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숨기는 알레고리를 알아내고 미스터리를 파헤치고 누가 내 편이고 아닌지를 판단해야 할지 젊었을 때는 생각하지 못하는 법이라고 애덤을 통해 이야기하는 듯 하다. 

인생이라는 것은 400년 동안 잠자던 정원의 비밀을 푸는 것, 한 가문의 피의 역사를 알아내는 것과 같은 무게를, 아니 더한 무게감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걸 더 많이 살다보면 알게 된다. 사건이라는 문제는 그 어떤 사건이든 동서고금을 떠나서 인간이 늘 저지르는 일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애덤도 예외일 수는 없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도 마찬가지고. 그러니 아직도 단테의 <신곡>이 읽히는 거 아니겠는가 말이다.  

마크 밀스의 작품은 처음 읽는다. 이야기의 구성이 탄탄하고 주변 상황 묘사와 심리 묘사가 좋다. 2차 대전이 지나고 전쟁을 잊지 않은 세대, 전쟁을 경험한 세대들이 더 많은 5,60년대 즈음을 배경으로 이탈리아의 역사와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나이에 어울리는 열정과 질투가 모여 한 가문의 미스터리를 극대화하고 있다. 스릴과 서스펜스가 꼭 사람을 얼마나 많이, 그리고 잔인하게 살해하느냐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여주는 것 같은 매력적인 미스터리 작품이다. 계속 이 작가의 작품을 기다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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