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플랜 노블우드 클럽 3
야나기하라 케이 지음, 이은주 옮김 / 로크미디어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일본 미스터리 주간지 <주간문춘>이 선정한 20세기 걸작 미스터리에서 미야베 미유키나 다카무라 카오루, 시마다 소지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한 텐도 신의 제32회 일본 추리작가협회 상 수상작이기도 한 <대유괴>라는 작품이 있다. <대유괴>를 읽었을 때 그 기발함에는 감탄했지만 출판 당시 읽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세월이 작품이 전해 주는 기발함의 느낌을 많이 퇴색시키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작품은 언제나 그 시대의 발자국을 읽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대유괴>는 70년대 말 일본의 한창 부흥기를 작품에 가득 담고 있다. 시대에 대한 코드가 어긋난 느낌은 좋은 작품을 실망하며 읽었다는 생각에 찜찜함을 감출 수 없었는데 그때의 아쉬움을 이 작품 <퍼펙트 플랜>을 보면서 지금 필요한 '대유괴'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을 대변하고 있다고나 할까. 

왕년에는 잘 나가던 호스티스였지만 지금은 나이가 들어 대리모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요시에는 자신이 낳은 아이 도시나리를 보러 갔다가 아이가 엄마에게 학대받는 모습을 보고 아이를 유괴하고 만다. 그 모습을 보게 된 예전 애인이자 은혜를 입었던 호스트 클럽 호객꾼 고지는 요시에를 돕기 위해 카지노 점장 사토루와 증권에 손댔다가 망하고 보디가드를 아르바이트로 하는 류세에게 상담을 한다. 그 결과 아이도 구하고 유괴도 성립하지 않게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내고 만다. 바로 도시나리의 아버지인 증권 매매를 사업으로 하고 있는 그와 손을 잡고 주식 매매를 하는 것이다. 아이는 엄마의 학대로 잠시 보호하겠다고 하고. 마침 회사가 흔들리던 참이라 아이 아버지인 미와씨는 그들의 내부자 정보를 통해 그동안의 손실을 만회한다. 아이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을 새도 없이. 하지만 이들은 몰랐다 이들을 감시하는 눈이 있다는 사실을. 크래커 요슈아가 그들 사이를 오가며 탐색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도시나리가 유괴됐을 때 경찰에 알렸다가 아이가 돌아와서 사건을 종결됐지만 특수반의 가오루만은 미와 집안을 감시한다. 그녀도 도시나리가 학대받고 있다는 걸 감지한 것이다. 

사건은 유괴에서 시작되지만 점점 증권 거래와 크래커의 문제, 대리모와 미용성형을 위해서라면 어떤 실험도 하는 반윤리적 문제등을 보여준다. 또한 '발없는 말이 천리간다'는 속담처럼 인터넷을 통한 소문이 얼마나 빨리 퍼지는지도 알 수 있었다. 그것을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을 막을 수 없다는 것도 현대가 안아야 하는 커다란 문제임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고독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 가족을 향한 근본적 그리움이다. 인간의 근원적인 귀소본능과 앞으로도 인간이 매달리게 되는 것은 가족이라는 이야기가 이 작품의 유괴와 모든 작전의 긴박감 사이 사이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패배자로밖에 안보이는 이들, 요시에와 고지, 사토루, 류세, 그리고 우울증에 걸린 류세의 아버지 야스오가 모두 야스오의 집에 모여 에니그마라는 팀을 만들고 도시나리와 야스오를 돌보며 지낸 며칠로 인해 이들은 자신들이 결국 원하던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목표를, 돈을 많이 가로챘다는 기쁨이 아니다. 바로 가족이다. 가족이 주는 따뜻함과 평온함을 느낀 것이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비로소 말이다. 

재미있어 쉽게 몰입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유괴를 재미있다고 말하는 것은 어패가 있지만 단순한 유괴가 아니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또한 속도감도 있었고 스릴도 있었다. 거기에 요시에와 야스오, 요슈아, 사키코, 가오루까지 캐릭터들의 특징이 잘 드러나고 있다. 모두의 어머니를 연상시키는 요시에, 아버지와 한 인간으로 삶에 대한 긍정적인 모습이 마치 현자를 연상시키는 야스오, 오타쿠의 전형이자 사회가 만들어낸 악의적 인물의 전형을 보여주는 요슈아, 요시에와 전혀 반대되는 캐릭터의 모습을 보여주며 도시나리를 학대하는 엄마로 등장하지만 그 비틀린 마음의 근원에 똑같은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아동학대의 상처가 어떤 인간으로 자라게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사키코, 젊고 패기있는 자신의 뜻을 끝까지 관철시키는 여형사를 잘 나타낸 가오루. 이들 캐릭터의 조화와 함께 마지막까지 긴장하게 만드는 스토리텔링 또한 좋았다. 가족이 그렇게 쉽게 탄생하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  

퍼펙트 플랜이란 '몸값 제로! 가로챌 돈은 5억 엔! 아무도 죽이지 않고, 아무도 손해 보지 않는다. 이건 범죄지만 범죄가 아니다!'라는 이들의 기본 계획만이 아니다. 그보다는 가족 만들기, 제대로 된 가족의 구성원이 되기가 진짜 퍼펙트 플랜이다. 물론 이것은 꿈이자 환상이다. 완벽한 가족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행복한 가족은 세상에 많이 존재한다. 야스오의 마지막 말처럼 나쁜 일이나 슬픈 일은 강물에 흘려 보내고 어울려 살려고 노력한다면, 그리고 사토루처럼 부모가 준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원망하는 대신 감사히 받아들인다면 퍼펙트 플랜은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지, 무엇을 원하고 있는 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지금 방황하는 현대인들이 어디로 가야 하는 지를 알려주는 내 마음을 고맙게 유괴한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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