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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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외할머니께서 집에 오시면 꼭 나와 동생과 함께 주무셨다. 잠자리에 들면 동생은 옛날 얘기 해달라고 졸랐고 할머니는 늘 "옛날 옛적에..."하시며 이야기를 해주셨었다. 동생은 금방 잠이 들었고 나는 졸음을 참으며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 옛날 이야기가 매일 듣고 싶어서 할머니랑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으로부터 이십오년이나 지난 그야말로 옛날 이야기다. 미야베 미유키를 미미여사가 아닌 미미아줌마로 부르고 싶어질만큼 그가 들려주는 에도 시대 옛날 이야기를 읽다보니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이 났다. 그립고 애틋하고 허전한 내 마음처럼 옛날 이야기는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야기의 토대는 에도 시대 혼조 후카가와에 전해지는 일곱가지 불가사의한 이야기를 토대로 에코인의 모시치라 불리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치안을 담당하는 형사같은 인물이 사건을 접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연작으로 엮은 단편집이다.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는 모두 장사집이다. 초밥집, 메밀국수집, 담뱃가게집, 생선가게집, 버선가게 등 장사를 중요시했던 나라답게 다양한 가게가 등장하고 주인과 일꾼들, 그리고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읽는 내내 상상하게 잘 묘사하고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외잎 갈대>는 한 메밀가게에서 일하는 청년이 어린 시절 자신을 도와준 초밥집 아가씨가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를 받게 되자 걱정을 하는 이야기다. 단순한 이야기 속에 옛날 이야기가 담아 내야 하는 교훈과 따뜻함을 잘 표현하고 있다. 외잎 갈대는 순수한 짝사랑의 상징처럼 아름답다. 어린 사랑 한번쯤 안해본 사람 없을 것이고 짝사랑 한번 안해본 사람 없을테니 아마도 순수한 청년이 간직하고 있는 조금은 씁쓸하지만 그래도 그것으로 족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배웅하는 등롱>은 그 시대 부모 잃은 어린 소녀가 하녀로 살아가는 일의 고단함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사건보다도 배웅하는 등롱의 따뜻함이 있어 그런 소녀들의 고단함을 조금이나마 덜어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고 지칠 때, 어둠속에 갇힌듯한 느낌에 허우적거릴때 나를 위해 누군가 등롱 하나 들고 어둔 길을 밝혀줄 것이라 생각하면 산다는 건 그리 외로운 것만은 아닐 거라고 위로해본다. 내게도 그런 내 길을 배웅하는 등롱이 있음을 알기에. 

<두고 가 해자>는 모시치의 재치가 빛난 작품이다. 요괴나 요물이 특히 많은 일본이니 이런 이야기가 없으면 섭섭하겠지만 그것을 단순한 요괴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살이의 이야기로 만든 점이 흥미롭다. 언제나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자 애쓰는 모시치는 한 장소의 치안을 담당하는 것뿐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이야기를 훈훈하게 만든다. 서로 돕는다는 것은 결국 이런 것일테니까.

<축제 음악>은 남의 험담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엄마는 늘 구업을 짓지 말라고 하시는데 그러기 쉽지 않은 요즘이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이야기를 무심코하다가 아차 할때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세치 혀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고 했으니 단순함 속에 오늘날 우리가 다시 되새겨야 할 진리를 깨닫는다.

<꺼지지 않는 사방등>은 이야기가 조금 낯이 익다. 어디선가 들은 듯한 이야기다. 뭐 이런 이야기가 일본에는 많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희망이라는 삶의 꺼지지 않는 사방등을 켜고 살아간다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단단한 마음가짐처럼 희망도 삶에 대한 의지가 있을 때 더욱 빛나고 가치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들 그런 사방등을 가지고 싶지 않겠냐마는 그것에만 의존한다는 것은 보기 애처로운 일이고 허무한 일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옛날 이야기의 기본인 단순함, 기이함, 교훈을 두루 갖춘 따뜻한 작품들만 모은 재미있는 단편들이었다. 모시치를 주인공으로 장편을 써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 내내 좋았다. 옛날 이야기가 나를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다시 한번 외할머니와 함께 누워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는 기분이었다. 어떤 작품을 써도 미미여사든 미미아줌마든 마음이 따뜻해져서 좋다. 내 어린 시절의 그리움을 되찾아주고 할머니 얼굴을 떠올리게 해준 미미아줌마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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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팬더 2008-09-19 1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미여사의 이야기 보따리는 정말 끝이 없는것 같아요. 사회의 문제점을 심도있게 파해치는 사회파 추리소설부터 SF가 가미된 소설, 그리고 게임판타지같은 소설까지...정말 대단한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재미있는 단편들까지 내놓는것 보면 그 식지않는 창작력에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군요. 아~~ 참 오늘 제가 엄청난 발견을 하고 말았는데요. 이누가미 일족을 일독하고나서 그동안 주문해놓고 한참 미루고 있던 제프리 디버의 사라진 마술사를 꺼내들었습니다. 그런데 책 뒷면에 마술사 이은결씨랑 최현우씨 리뷰및에 바로 물만두님~!!! 리뷰가 적혀있는것이 아닙니까??!!! 그때의 그 전율이란..물만두님이 이렇게 대단하신분인줄 여기오시는 분들중에 저만 몰랐던거죠? 아무튼 각설하고 이누가미일족은 최고의 작품이었네요. 마지막 웬지모를 찡한 감동까지.....ㅜㅡ

물만두 2008-09-19 20:54   좋아요 1 | URL
미미여사를 좋아하게 되는 이유가 그런거 아니겠어요^^
아이고, 그거 예전에 한편 썼는데^^;;; 참 부끄러운 글입니다.
사실 그때 제가 막 자랑해서 아시는 분들은 아세요.
이누가미 일족 정말 대단하죠. 전 긴다이치 코스케 작품 중 최고로 꼽고 싶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