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스 읽는 여인
브루노니아 배리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처음 책을 봤을 때 '레이스'란 말에 평범한 소설로 생각했다. 그런데 미스터리가 담긴 소설이라니 호기심이 생겼다. 레이스와 미스터리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도 궁금했다. 고모 할머니의 실종으로 15년만에 고향 세일럼으로 돌아온 타우너. 사람들뿐 아니라 그녀 자신도 스스로를 미쳤다고 생각하고 정신병원에도 들어갔었다. 그리고 마주하게 되는 할머니의 시신. 할머니가 유언으로 집을 타우너에게 남겨서 타우너는 어쩔 수 없이 세일럼에 잠시 머문다. 그리고 여전히 타우너는 자살한 쌍둥이 린들리를 마음 아프게 기억하고 있다.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속에.

학대와 폭행을 피해 도망쳐 온 여인들의 피난처가 된 섬과 그 섬을 지키는 메이, 마녀 사냥의 추한 역사를 뒤로 한 채 마녀에 대한 것을 상품화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 그리고 아내를 폭행하고 도망을 갔다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캘빈교를 만들어 다시 세일럼에 나타나 마녀를 몰아내고 악마퇴치를 목적으로 아르마니 양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미치광이 남자, 임신하고 구타당하고도 다시 돌아가 실종된 여자, 여기에 상처를 지닌 채 전근 온 경찰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처음 타우너는 자신을 거짓말을 잘한다고 소개한다. 그리고 그녀는 정신병원에서 치료 후유증으로 기억을 부분부분 상실했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와 그녀가 쓴 글을 읽으면서 어떤 부분이 사실이고 어떤 부분이 지어낸 이야기고 어떤 부분이 남에게 들은 이야기인지 구분하기 힘들게 짜여져 있다. 마치 레이스를 읽기 위해 눈물이 맺힐 정도로 레이스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무언가를 보아도 그것을 잘못 해석할 수 있다고 에마의 레이스 읽기 가이드에 적힌 것처럼.

하지만 확실히 내 속을 부글부글 끓게 만드는 것은 학대받고 폭행당하는 여성이 아직도 많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단순히 한 여성만의 일로 끝나지 않고 자식에게까지 폭행을 가하게 만들게 되고 그러다가 되물림되기도 한다. 사랑과 용서라는 이름으로 폭력에 맞설 수 있을까? 그것은 폭력이 끝난 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어쩌면 있을 수 있는 일이지 폭력은 폭력에 의한 끝이 아니면 죽음으로밖에 끝나지 않는다. 가정 폭력은 어쩌면 살인보다 더 무서운 범죄일지 모른다. 너무 쉽게 세상이 이 일을 방치하고 방관하고 있다. 이것은 여자만의 일도 아니고 남자들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일도 아니고 확실한 범죄고 범죄 그 이상의 문제다.

책을 덮은 뒤 레이스의 환상은 아직도 나를 사로잡고 있고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세상이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 옛날 노예들이 숨어서 피난을 가려 머물던 땅을 파서 만든 골방이 남아 있듯이 도망다니고 숨어 있어야 하는 여성들을 위해 아직도 그 골방은 남아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환상적이면서 사실적이고 미스터리하면서 잔인한 그런 작품이었다.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아라'라는 말을 레이스 받침대 주머니에 넣어 둔 에바 할머니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그 대답으로 '마법이 풀렸어요. 이제 할머닌 자유예요.'라고 말한 타우너의 말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해서 가슴 짠하게 울린다. 정말 그래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동화적 환상이 누군가에게는, 상처입은 이들에게는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금도 어디선가 레이스를 짜고 있을 조용한 여인들의 마음이 행복만을 레이스에 담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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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8-07-19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날인데 삼계탕 국물이라도 드셨나요? 더운여름날도 조심또 조심해야 되요.
근데 와글와글 월드컵책도 읽으셨대요. 제가 thank to 눌럿어요.다양한 종류를 읽으셨어요.^^

물만두 2008-07-21 10:53   좋아요 0 | URL
복날에 감기 걸렸으요 ㅜ.ㅜ
그 시리즈는 대부분 가지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