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방관자의 심리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이성현 옮김 / 노마드북스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에서 작가가 출판한 단편집의 표제작은 첫 작품 <진상>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출판사에서느 <살인방관자의 심리>가 더 마음에 들었나보다. 차라리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살생부>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장 이 단편집에서 마음에 드는 단편을 표제작으로 한다면 말이다. 일본어 원작 제목은 다음과 같다. <真相>, <18番ホール>, <不眠>, <花輪の海>, <他人の家>. 원작 제목을 적어주는 친절 정도는 보여줘도 좋으련만 제목을 바꿔서 당황했다.

<진상>은 아들을 어린 나이에 누군지도 모를 범죄자에게 살해로 잃고 십년만에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의 이야기다. 아버지의 기억 속 열다섯의 아들은 의젓하고 공부 잘하고 착하고 모범적인 무엇 하나 나무랄 곳 없는 완벽한 아들이다. 하지만 그 아들의 추억마저 범죄자는 흠집을 내려고 한다. 도대체 아버지는 아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범죄자가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열심히 일만 하느라 앞만 보고 달리는 아버지들의 심리를 잘 묘사한 작품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들의 모습을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진짜 진상은 아버지가 마지막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깨닫는 그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음의 지옥>은 할아버지가 면장을 하던 곳으로 다시 돌아와 면장이 되기 위해 애쓰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원래가 도둑이 제발이 저린 법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 죄를 어떻게든 은폐하려는 소시민의 심리를 세밀하게 마지막까지 잘 표현한 작품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죄는 지은 대로 가고 공은 닦은 대로 간다는 말이 맞기에는 범죄자들에게 인간성을 바라기 어려운 세상이고 더욱이 이런 상황은 누구든 닥치지 않으면 어떻게 대처할지 알 수 없는 일인지라 그저 주인공의 모습이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살생부>는 정리해고 당한 남자가 실업급여를 타면서 수면 장애 약물 실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오히려 불면증에 걸려 밤 산책을 갔다가 사건의 목격자가 되는 이야기다. 이태백, 삼팔선, 오륙도라는 말이 한참 있었고 지금도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남의 일만은 아닌 이야기다. 또 어느 나라든 있게 마련인 이야기다. 세계화다 뭐다 해서 각 나라마다 난리중이니까. 그래도 아버지들은 돈을 벌어야 한다. 가장 가부장적이라는 설문조사가 나온 일본 남자들은 특히 더할 것이다. 그러니 정리해고는 4,50대 남자들에게는 살생부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주저 앉을 수도 없다. 아내와 아이들과 고통분담하지 않는 가정이 과연 가정일까? 남의 일이 아니라서 더욱 마음에 남는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아버지가 살아오신 인생에 머리가 숙여지는 건 어쩌면 살생부를 등에 지고 사셨다는 걸 점점 더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아직 그 고달픔의 깊이는 알 수 없지만.

<살인방관자의 심리>는 12년전 대학의 가라데부에서 합숙 훈련 중 일어난 지옥 같은 경험과 그때 사고로 죽은 동료에 대한 동기들의 심리를 담고 있다. 동기의 사고사로 슬프기보다 훈련이 중단되서 기뻐할 수밖에 없었던 그날, 그 기억의 창피함을 12년동안 묻어두고 산 5명의 동기들. 그리고 이제서야 그날 일을 자세히 알고 싶다는 죽은 동기의 부모, 각기 속내를 드러내는 친구들. 이런 심리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심리가 아닐까 싶다. 긴급피난이라는 법률용어가 있다. '급박한 위난(危難)을 피하기 위하여 부득이 취한 행위'를 말하는데 예를 들면 바다에 빠졌을때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구조하지 않거나 6명만 탈 수 있는 보트에서 7번째 사람을 바다에 버리는 그런 행위를 말한다. 물론 이 책의 내용과는 거리가 있지만 아마 기분은 이런 기분일 것이다. 긴급피난이었다고 해도 그 사람들도 그 일을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이라 그렇다. 모질고 질긴 목숨, 제 목숨 하나가 더 중요하게 만들어진 이기적인 동물이라서. 그러니 어쩔 것인가. 인간인 것을.

<그 집의 미스터리>는 형이 남긴 빚때문에 친구의 꾀임에 빠져 도둑질을 하려다 강도로 붙잡혀 전과자가 된 남자와 그 아내가 전과자로써 자리를 못 잡고 아파트에서도 쫓겨나는데 한 마음 좋은 노인을 만나 그 노인의 양자가 되어 집과 재산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남자의 마음은 한구석 찜찜함이 남아 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다. 선행도 이기적인 이타심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늘 불운했던 남자가 갑자기 행운의 사나이가 된다고? 뭐, 로또 당첨자도 있으니 어쩌다 있기도 하겠지만 나라도 의심스럽겠다.

작가는 5편의 미스터리 단편을 통해 인간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다. 분노와 좌절, 초조함, 낙오자같은 기분과 패배의식, 죄책감, 불안감으로 심리 미스터리를 잘 보여줬다. 그 심리속에는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가 있었다. 어쩌면 그 기본적인 욕구가 모든 범죄의 기본이 되는 것이리라. 역시 휴먼 미스터리의 대가 요코야마 히데오라고 엄지 손가락을 들어본다.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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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9 13: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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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9 14: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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