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삼킨 책
볼프람 플라이쉬하우어 지음, 신혜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그 이면을 추적하는 과정은 추리소설같았다. 하지만 점점 읽어가면서 이 작품을 추리소설로 단순히 말하기에는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것은 종교와 철학의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니콜라이가 노인이 되어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아니 처음 기차를 손녀와 타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 작품은 결국 인간의 생각에 대한 이야기다. 의사인 니콜라이는 우연히 영주의 죽음을 접하게 되는데 그의 죽음은 자살이지만 그가 보미카라는 향수병에 의해 질식사했음을 알고 놀라게 된다. 그 병은 군인들이나 걸리는 병이기 때문이다. 그런 병을 영주의 아들과 딸, 아내까지 모두 앓고 죽었다는 사실과 사건을 조사하러 온 사법재판관과 함께 사건의 배후를 알아내기 위해 그를 따라다니고 거기에 살인 사건의 목격자로 발견된 막달레나라는 여인과의 만남 등이 니콜라이를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지만 그는 혼자의 힘으로 사건의 배후에 다가간다.

책 띠에 <장미의 이름>을 언급하고 <살인의 해석>도 언급했다. <장미의 이름>보다 짜임새는 덜하고 <살인의 해석>보다 추리적인 면은 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작품이 늘 그렇듯이 18세기 독일에 대해 세심하게 보여주고 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철학보다 그것이 더욱 매력적이다. 그리고 너무 칸트에 대해 기대하지 않는게 좋다.

내 눈길을 끈 것은 소소하고 작은 그 시대 독일 사람들의 생활상이다. 18세기 이전까지 독일은 감자를 잘 먹지 않았다고 한다. 감자는 돼지먹이로 여겨서 감자를 먹는 니콜라이를 경멸하기도 한다. 독일하면 감자가 떠올랐는데 우리나라가 김치에 고추가루 넣고 만든 것이 얼마 안된 것과 같다니 놀라웠다. 또한 그 시대 의료 행위보다 사이비 치료사가 더 많았다는 것, 영주들때문에 서민의 등골이 휘었다는 것, 다른 나라와의 무역을 막았지만 커피, 담배의 밀수가 성행했다는 것, 교회의 비리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우편마차가 있었고 책이 비싸 불법 복제책이 많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어서 처음 기차를 타고 흥분하는 니콜라이의 손녀처럼 나도 즐거웠다.

생각이란 무엇인가? 믿음이란 무엇인가? 종교란 무엇이고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작가는 작품을 통해 묻고 있고 독자에게 생각하기를 유도하고 있다. 하나의 사상의 출현이 한 시대, 나아가서는 전 인류의 몰락을 가져올 수 있는가 묻고 있다. 종교는 철학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는 종교도 철학도 거리가 먼 학문이고 모르는 분야지만 그들의 출발점은 같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책 뒤에 이런 물음이 있다. '하나의 사상이 세상을 삼켜 버릴 수 있을까?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살인을 부를 수 있을까?' 당연히 있을 수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인간의 역사를 보면 이런 일들이 언제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과 유교, 성리학의 관계를 살펴보면 칸트까지 가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또한 오늘날에도 우리는 사상이, 종교가 어떤 폭력으로 변화되는 지를 보고 있다.

<퍼플라인>에서도 익히 알 수 있었지만 작가는 이 작품에서는 좀 더 미스터리를 버리고 역사를 재구성해서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더욱 결론없이 독자가 "그래서 세상을 삼킨 책이 어쨌다구?"하고 묻게 한다. 작가는 답을 내놓지 않았고 이제 그것은 독자 스스로 알아가야 하는 문제다. 나는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다. 산다는 것과 생존한다는 것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산다는 게 그렇게 대단하지 않고 종교나 사상 또한 그리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다. 삶이 생존과 다르다는 발상은 종교나 사상을 가진 인간이 우월하다는 논리 위에 성립되는 것인데 인간은 그 어떤 것보다 우월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뭔 소리를 하는 건지... 아마 나도 책에 삼켜졌나보다.

책이 세상을 삼키건 세상이 책을 삼키건 중요한 건 여전히 인간은 이기적이고 배타적이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데 주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책은 계속 세상을 삼키게 될 것이고 세상은 책으로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무섭게 느껴지는 제목이지만 인간의 역사가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니 어쩔 수 없지 않을까 싶다. 모르는 것 투성인데 읽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작가의 장점인 세밀한 역사 묘사 때문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읽기에 족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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