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수녀
돈나 레온 지음, 엄일녀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이탈리아 하면 마피아를 떠올리게 된다. 마피아하면 잔인한 복수, 피의 맹세 뭐 이런 것이 연상된다. 그런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작가는 마치 일상의 미스터리를 보여주는 것처럼 수상경찰선을 타고 다니는 귀도 브루네티 경감의 평온함은 오히려 낯설게도 느껴진다. 하지만 이탈리아라고 마피아만 있는 건 아닐테고 경찰이라고 대단한 사건만을 수사하는 건 아닌 것이다. 오히려 이 작품처럼 탐문 수사와 별거 아닌 소소한 일, 그리고 경찰이지만 가족이 있는 가장으로써의 일상이 더 현실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머니의 요양원에서 만난 환속한 수녀가 브루네티 경감을 찾아와 죽은 이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가지만 탐문 결과 별다른 의문점은 없다. 유언의 이상한 점도 없어서 그냥 종결해버린다. 그리고 딸 아이의 종교과목을 가르치는 신부에 대해 더 신경을 쓴다. 신학을 유럽 역사의 하나로 배우게 한 귀도는 지금에서야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는 중이다. 하지만 그 뒤 일반인이 된 수녀가 사고를 당하자 사건은 급반전된다. 거기에 뭔가 은폐된 음모가 잡힐 듯 하면서 이어서 상속인 중 한명도 갑자기 죽는 일이 발생한다.

이 작품은 종교에 대해 시니컬한 브루네티 경감의 아내만큼 종교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은 점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곳이 이탈리아라는 점이 더욱 특이해보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종교가 생활이 되어버린 곳에서 종교는 오히려 인간과 동화되어 본질만 남고 정치적인 종교적 이면에 대해 거부감이 들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신을 믿는다는 것이 종교를 믿는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작품은 내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종교가 결말이 날 소재가 아닌 관계로 사건도 결말이 나지 않는다. 귀도 브루네티 경감은 작은 문제의 해결로 만족하려하지만 종교가 권력과 함께 할때 어떤 문제가 일상에서까지 나타나는지를 오히려 잘 보여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정말 귀도 브루네티 경감이 백작의 사위라서 살아남은 건 아닌지, 그렇다면 결국 힘있는 자만 살아남고 힘없는 자는 사라지게 된다는 얘긴데 그러고 보니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이런 소재, 종교, 양로원, 유언, 실종, 음모를 다룬 작품들이 대부분 서스펜스와 스릴을 안겨주는데 이 작품은 느리고 한가롭기까지 하다. 그러면서 베네치아를 누비는 강물 속에 콜레라가 있듯이 그런 평온함이 사회 속에 만연된 폭력과 권력으로부터 떨어져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언제 빠져 콜레라에 걸려 죽을지 모르듯이 언제 누가 사회의 부조리에 희생양이 될지 모르는 일이라고. 하지만 퍼지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덮칠거라는 것을 알려줘서 그들의 평온함이 태풍의 눈속의 고요와 같음을, 우리가 사는 사회가 그러함을 시사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 빠른 전개에 묻힐 위험은 없으니까. 아마도 이것이 돈나 레온의 귀도 브루네티 경감 시리즈의 장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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