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링 - 어둠 속에서 부르는 목소리
야나기하라 케이 지음, 윤덕주 옮김 / 스튜디오본프리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같은 보육원 출신으로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레이와 준야는 조금 독특한 청소업체를 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시체 청소다. 자살, 살인 등으로 방치된 사체나 그 뒤에 남은 잔재들을 모조리 깨끗하게 청소해서 원상복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물론 틈틈히 집안 청소를 못하는 곳도 청소해주고 있다. 그러던 중 너무 늦게 발견된 시체의 청소를 맡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유령과 전파가 통했던 준야는 그곳에서 죽은 여자의 혼령을 본다. 그리고 그 자살로 추측되는 여자의 죽음이 궁금해서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 자신의 일기를 올리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그녀의 조사를 시작하게 된다.

너무도 예쁜 여권 사진의 여자가 왜 갑자기 자살한 것일까? 아무리 사어버 세계라지만 그녀의 죽음을 알려주는데 그 중 한 여자에게서 그녀와 친구 사이였음을 알고 만나게 된다. 그런데 그녀가 가져온 죽은 여자의 사진이 여권 사진과 달라 이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호러 미스터리라고 해서 무서울 거라는 것은 각오했다. 하지만 이렇게 독특한 소재로 우리 사회까지 관통해서 오늘날의 문제를 날카롭게 꼬집을 줄은 몰랐다.

사이버 세계라는 좋은 만남의 장인 동시에 자신의 존재를 쉽게 드러냈다 감출 수 있는 고독한 세계이기도 한 공간에서 이미 살아가거 있는 현대인들에게 인터넷이라는 가상 세계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동시에 여전히 현실 세계에서는 외모지상주의로 치닫고 있어 그것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고독도 들여다보게 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호스트와 호스테스라는 직업으로 산 쇼와 사리나가 오히려 건강한 현대인으로 보이기까지 하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엔 명백하게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과거에 많이 사용되었던 치명적인 그 어떤 독보다도 잔인한 독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는 그 독에 노출되어 있을지 모른다. 읽어보면 알게 된다. 그 끔찍한 독의 정체는.

199쪽에서 사리나는 준야에게 이런 말을 한다.

"사람들의 작은 배려나 자상함이 세상을 바꿔 나가는 거라고 난 믿어. 그런 걸로 사람은 구원을 받기도 하고, 그걸 얻지 못해서 죽을 정도로 추락하기도 하는 거야."

맞다. 그 작은 걸 우린 남에게 주기를 참 꺼려한다. 남의 험은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으면서 좀 넘어가주고 어깨를 토닥여주고 빈 말이나마 '괜찮아. 좋아. 그런 점이 오히려 네 장점이야.' 등 이런 말은 인색하다.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들, 자신도 원하면서 남에게 주지 않는 것에 대해 우린 정말 많이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나눠야 한다. 그것이 어쩌면 간절한 콜링인지 모른다.

256쪽에서 257쪽에 걸쳐서는 이런 말이 등장한다. 이 작품을 잘 나타내는 문장이다.

'페르소나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쓰게 되는 가면, 그림자는 뒤에 감춰진 본질, 잠재적인 욕망.
페르소나와 그림자는 대립하면서 서로 보완하는 관계, 한쪽이 희다면 다른 한쪽은 검다. 한쪽이 플러스라면 다른 한쪽은 마이너스, 페르소나의 가면이 두꺼우면 두꺼울수록 그림자도 더욱 검고 거대해진다.
페르소나에 이끌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우린 너무 많은 가면을 쓰게 되었다. 복잡한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가면이 그만큼 많이 필요해진 것이다. 하지만 가면을 너무 많이 쓰면 자신의 본질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것은 자명한 이치다. 결국 가면이란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추는 것이니까 너무 많이 감추다보면 자연히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가면속에 묻히게 되는 것이다. 왜 본 모습 그대로 살려 하지 않는 것일까? 왜 거울을 보며 자신의 단점만을 보고 장점은 찾아내지 못하는 것일까? 왜 다른 사람들의 비아냥에 놀아나는 것일까? 그렇게 자신감을 잃어버린 자신에게 무슨 존재가치가 있다고. 그것이 안타깝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페르소나에 이끌려 가고 있다. 페르소나 때문에 떠밀려 가고 있는 것이다. 나락으로 말이다.

예전에도 이런 얘기를 했다. 다리를 하나 잃게 된 소녀가 수술을 받고 목발을 집고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세상아, 비켜라. 내가 간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산다. 고독과 고립은 누군가가 억지로 만들엊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만드는 페르소나, 그리고 그림자로 만드는 창살없는 감옥, 마음의 감옥이다.

작가는 간단한 플롯을 가지고 하나의 꽉 짜여진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인간에 대한 생각과 공포와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게 만드는 능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책을 읽는 내내 우리의 사회 문제를 일본이 대신 이야기하는 느낌을 받았다. 놓치기 아까운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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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팬더 2008-04-12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놓치기 아까운 좋은 작품이다 란 물만두님의 맨트가 저를 또 유혹하는군요. 그런데 다른 질문좀 드려도 될까요?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을 재밌게 읽어서 나이팅게일의 침묵을 구입 고려중인데 물만두님 리뷰는 없더라구요. 3월 독서 리스트에는 있으시던데 어떤가요? 읽을만 한가요? 다른 분들 리뷰들이 좀 그래서요. 군인이다 보니 책을 최대한 알짜로만 구입할수 밖에 없다보니... ㅜㅜ 간단한 감상평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만두 2008-04-13 15:57   좋아요 0 | URL
리뷰가 없다구요? 올렸는데요. 흠... 저도 좀 그랬는데 다음에 나오는 작품과 같은 시간대에 일어나는 일을 보여준다고 하니 읽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http://blog.aladdin.co.kr/mulmandu/1953325
제 리뷰는 여기 있어요^^

핑크팬더 2008-04-13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올리셨군요. 감사합니다. ^^

물만두 2008-04-14 11:00   좋아요 0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