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노는 아이들 - 상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윤정 옮김 / 손안의책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원하고 원망하는 모든 i들의 이야기라고 하고 싶다. 모두라고 한 것은 마음 속에 품은 것까지 모두를 말한다. 내가 이런 입장이었면 이렇게 생각할 테고 대다수 사람들도 그리 생각할 테니까. 이런 소재의 작품들을 볼 때마다 가슴 답답하고 분노하는 나를 보면서 점점 이런 내 모습도 위선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이런 경험이 없었으니까. 온실 속의 화초가 벼랑 끝에서 겨우 매달려 비바람에 시달리면서도 꽃을 피우는 들꽃의 생명력, 그 고통을 알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대학생을 위한 논문 콩쿠르가 있다. 거기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면 미국 대학으로 유학 갈 수 있다. D대학의 고즈카와 기무라는 둘 다 논문을 제출했다. 모두 둘 중 한 명이 뽑힐 거라 예상했는데 결과는 익명으로 참가한 i에게 돌아갔고 그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 후 2년이 흐른 뒤 갑자기 살인 게임이 시작된다.

범인이 읽으면서 스스로 정체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범인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독자들은 더욱 몰입하게 된다. 범인을 알게 되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작가가 무엇을 더 보여줄지 독자는 기대하며 보게 된다. 그것이 범인을 밝히고도 독자를 사로잡는 작가의 능력이다.

파리나 바퀴벌레는 죽여도 되는데 나비나 잠자리는 왜 죽이면 안되는지 묻는다. 만약 어린아이들이 이런 질문을 한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냐고. 좋게 대답해야겠지. 아이들에게는. 하지만 파리나 바퀴벌레는 나쁘고 나비나 잠자리는 좋기때문이라고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 결국 파리나 바퀴벌레도 죽이게 되고 나비나 잠자리도 죽이게 되니까. 단지 파리나 바퀴벌레는 무심하게 죽이고 나비나 잠자리는 유심이 있어 죽이는 - 표본 말이다. - 것의 차이가 있으니까. 여기에 인간은 왜 죽이면 안되냐고 묻는다면 참 비참해질 것 같다. 아이들이 이런 질문을 하게 되는 사회가 말이다.

고즈카를 중심으로 그의 친구들과 그가 학교 생활하는 이야기가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고 고즈카와 같은 연구실에 있는 고즈카보다 항상 뛰어난 기무라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한 축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고즈카를 따라 고향에서 대학으로 온 츠키코의 학교생활, 친구들, 그리고 고즈카와 츠키코가 만나는 접점을 따라 또 하나의 이야기 축이 형성된 삼각 구도가 하나의 살인 게임을 감싸고 돌아가는 구조로 되어 있는 이 작품은 한편에서는 살인이라는 잔인한 게임 이야기가, 그들의 말로는 인생은 쉽게 어느 날 갑자기 끝날 수 있는 거라는 듯이 펼쳐지고 한편으로는 대학생들의 생활과 사랑, 우정, 고민등이 펼쳐진다.

대학 생활이 낭만이었던 사람도 있다. 대학 생활이 동경이었던 사람도 있다. 그리고 대학 생활이 하나의 탈출구이자 구명줄이던 사람도 있다. 사람에게는 공평하다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누군가는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난다. 또한 누군가는 삶이 점점 내리막길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는 점점 오르막길이 되기도 한다. 노력은 노력할 여지가 있을 때 빛을 발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나비의 애벌레에게 기생벌은 알을 낳는다. 나비의 유충이 번데기가 되어 껍질이 벗겨지면 그곳에서 나비가 아닌 벌이 나온다. 나비의 애벌레에게 이처럼 가혹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던 기생벌을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것이 자연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뻔한 이야기 구조 속에서 그래도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리타이어도 쉽게는 못하는 거라고. 작품 속 인물들에게 역할 모델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게 하고 있다. 어른이라는 존재는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고. 부족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채워주고자 노력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그것이 없다면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누구에게서 배울 것이며,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알겠느냐고. 어른은 아이들에게 파리나 바퀴벌레조차도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해줄 의무가 있는 것 아니냐고. 아니 적어도 죽이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줄 수 있지 않냐고 말이다.

선과 악의 경계가 무너지고, 흑과 백의 논리가 무너진 오늘날 삶과 죽음 사이에서 무엇이 더 어떻다고 말하기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산다는 행위는 스스로 정하는 것이지만 죽인다는 행위는 남의 삶을 빼앗는 행위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기생벌이 아니라면 되도록이면 하지 않고 사는 것이 옳고 그름이 그래도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옳은 행위이다. 범죄는 어떤 순간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해를 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용서 받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이해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용서는 당사자 이외의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 단 한가지 유령 교실을 만들어 버린 아키야마 교수의 귓속말이 무엇인지 끝내 알 수 없었다. 아니면 나왔는데 모르고 지나갔나? 아키야마 교수가 어떤 말을 했는지 알고 싶다. 정말 궁금하다.

i가 무엇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i가 누구냐고 물은 다음 그 존재를 안 책을 덮은 뒤에 말이다. 이 나이먹도록 가슴에 분노만을 억누를 줄 알았지 그 다음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내 자신이 참 한심하게 생각된다. 나는 영원히 아이로밖에 존재하지 못할 것 같다. 위선자같으니라구. 이러고도 이렇게 말을 많이 하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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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2008-03-10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키야마 교수가 한 말이 뭐였을지는 저도 정말 궁금해요.

물만두 2008-03-10 16:48   좋아요 0 | URL
그죠? 한방에 보내시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