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밥 - 제133회 나오키상 수상작
슈카와 미나토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1960, 70년대 오사카를 배경으로 작은 사연 하나쯤 있을 법한, 이제는 나이든 어른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는 내용으로 꾸며진 단편집이다. 일관성 있게 배경을 오사카로 한 것이 흥미롭다. 오사카에는 재일동포들도 많이 산다. 그래서 한국인, 그 당시에는 조센징이라고 불렀겠지만, 아이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대부분이 오사카의 허름한 뒷골목이 배경이다. 아마도 추억이란 그런 곳에 대한 것이 더 가슴에 많이 남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런 곳이라야 어린아이에게도 사연이 있을 테고 말이다.

<꽃밥>과 같은 사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동생을 꼭 데리고 다녔고 그러다 버스에서 종점까지 간적도 있었다. 동생이 전생 이야기를 한다면 나는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지만 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어린 오빠의 마음은 이해가 갔다.

<도까비의 밤>은 지금도 남아 있는 서글픈 우리가 끌어안지도 못하는 생생한 이야기라 더 가슴이 아팠다. 재일동포로 그 시절을 살아가고 또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 이야기는 단지 이야기만이 아닐 테니까.

<요정 생물>은 어린 시절 순수함을 한 순간에 잃어버리게 된 여자 아이의 서글픈 이야기다. 요정 생물을 산 뒤 행운이 따른다고 믿었지만 그것도 잠시 엄마가 집을 나가서 집채 커다란 코인로커에 버려져 할머니 병 수발에, 몸이 불편한 아버지 수발, 거기다 원치 않는 결혼까지 하게 된 여자의 슬픈 이야기였다. 이런 이야기가 그때나 지금이나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회상의 이야기로 느낄 수 없어 더욱 씁쓸했다. 코인로커의 아이들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참 묘한 세상>은 제목처럼 유머러스한 작품이다. 인생이 다코야키라고 말하던 삼촌의 어이없는 죽음과 장례를 치르는 소년이 아이러니한 인생을 경험하게 되는 정말 어이없을 정도로 묘한 이야기다. 하지만 뭐, 살다보면 그런 일이 너무 많으니 묘하다기보다는 인연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지 싶다.

<오쿠린바>는 그 동안 읽었던 슈카와 미나토의 공포 작품에 가장 근접한 작품이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고통 없이 떠날 수 있게 해주는 오쿠린바라는 대대로 전해져 오는 여자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직업을 어린 나이에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다. 주문만 외우면 저세상으로 편하게 보낼 수 있다니 마지막 주인공이 나이가 든 지금 그 주문을 외우고 싶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이 이야기를 소재로 공포 작품 한편 써도 좋을 것 같다. 데스노트스러운 작품으로.

<얼음 나비>는 일본뿐만 아니고 우리에게도 있었던 그 시절 돈을 벌어야 했던 누나, 언니의 이야기다. 그런데 주인공이 왕따를 당하는 이유가 나오지 않는다. 일본도 인도처럼 카스트제도 비슷한 것이 있어서 천민이 남아 있다고 들은 기억이 있는데 그런 이들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아이누족도 차별을 받았다고 하지만 무대가 오사카니까 아닐 것 같고 부락민이라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슈카와 미나토의 작품답지 않은 어린 시절 향수와 그리움을 자극하는 슬프면서 자그마한 동화 같은 작품들이었다. 동화도 잔혹동화도 있고 배드엔딩도 있는 거니까 지금 생각해도 가슴 아픈 이야기들, 조금은 무서운 이야기들, 쓸쓸한 이야기들, 아름답고 예쁜 이야기들이 마치 여러 가지 나비들이 마음속으로 날아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이야기들을 읽으며 내 어린 시절도 생각할 수 있었기에 좋았다.

꽃밥이라... 예쁘다. 나 어릴 적에는 빨간 벽돌 갈아서 깨진 그릇에다가 흙 담고 고춧가루라고 뿌리고 밥이라고, 반찬이라고 하며 놀았는데 그때 난 왜 꽃으로 밥을 하며 놀 생각은 못했을까. 그래도 그런 흙밥도 지금 생각하면 정겨움 가득한 우리 시대 이야기니 소중하고 예쁘다. 어린 시절 뽑기에서 별모양을 잘 떼어내다가 별 꼬리 하나 잘려나가 침으로 붙이려고 애를 쓰다가 속상해서 입에 넣고 씹어 먹을 때 입안에 퍼지던 설탕의 달콤함과 소다의 쓴 맛이 함께 느껴지는 그런 작품이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08-02-14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마지막 문장에 필이 확~ 꽂히는데요.
오늘 아침엔 햇살이 눈부시네요~ 이 햇살을 소꿉놀이 꽃밥을 만들던 그 시절의 소녀들에게 보내고 싶어요. 빨간 벽돌 갈아서 놀았던 물만두님께도~ ^^ 따사로운가요?

물만두 2008-02-14 11:30   좋아요 0 | URL
햇살이 안보이네요^^;;;
찾아주신 님 덕분에 따사롭습니다~

Koni 2008-02-14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어딘가 쓸쓸하면서도 찡한 책이었어요.

물만두 2008-02-14 18:50   좋아요 0 | URL
맞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