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그림자의 책 뫼비우스 서재
마이클 그루버 지음, 박미영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요즘 작품들은 화자를 한 명에 국한하지 않는다. 보통은 두 명이고 여러 명이 돌아가며 이야기하는 형식의 작품들도 있다. 이는 독자에게 보다 객관적인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주려는 의도이기도 하고, 서로 다른 화자가 다른 곳에서 출발해서 작품 속에서 어떻게 만나게 되는가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고, 그 화자들의 같은 공간에서의 다른 생각을 각각의 관점에서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책이라는 텍스트의 시각화를 구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책이 영상매체들과 경쟁하는 관계에 있으니 말이다. 또 하나는 그것 자체가 일종의 플롯의 트릭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세익스피어의 미발표작품을 언급한 17세기의 브레이스거들의 편지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면서 그 책을 찾고 소유하려는 사람들의 살인과 유괴, 협박과 음모를 담아내고 있다. 그런 것을 담아내기 위해 제일 먼저 등장하는 사람이 지적재산권 담당 변호사라는 점은 우리가 사는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분명히 해주고 있다. 여기에 세익스피어 문학 권위자인 영문학 교수, 고서점 직원과 책 제본가가 꿈인 동료 직원, 그리고 러시아 마피아에 암호 해독가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작품의 구성은 먼저 지적재산권 담당 변호사 마이크가 자신의 친구 별장에서 괴로워하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노트북에 써내려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사건만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 더 나아가 자신의 부모 인생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그 다음은 17세기 문제의 브레이스거들의 편지를 액자 구성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편지에서도 브레이스거들은 죽어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아내에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인생 이야기 속에 세익스피어라 추정되는 섹스퓨어가 나오고 그의 미발표작품에 대한 언급,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 까지도 이야기하고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고서점 직원 크로세티가 등장한다. 고서점 직원 크로세티와 캐롤린이 못 팔게 된 책을 아마추어 제본가인 캐롤린이 자신의 집에서 그 책을 다시 복원하려다가 책 속에 그 책을 위해 한낱 종이로 제본을 위해 쓰여 졌던 다른 고문서를 발견하게 되면서 그들을 목숨을 건 사랑과 모험으로 몰아간다.

내가 주목한 것은 희곡과 연극으로 대변되던 세익스피어 시대인 17세기의 위트와 풍자를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는 크로세티를 통해 영화라는 21세기의 위트와 풍자로 대비하는 것과 지적재산권이라는 보호로 인해 과연 누가 보호를 받는 것이며 누가 이득을 얻는 것인지를 알려주는 것을 통해 300년이 더 지난 지금과 그 시대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작가가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정이 가지 않는 마이크와 그 가족을 통해 세익스피어가 그렸음직한 현 시대의 한 인물상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햄릿처럼 미쉬킨이라는 전형적인 인물, 심리학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인물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을 들고 싶다. 그 일가의 유전적인 결합이나 그들의 이후 성장 과정, 그리고 현재의 모습은 하나의 현대판 가족 구성원이 가질 수 있는 콤플렉스를 보여줄 수 있고 그것은 지금의 미국인, 나아가서는 현대인의 한 모습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서로 다른 가정의 형태와 그로 인해 상처 입은 사람들의 모습은 어쩌면 세익스피어가 연극의 소재로 그렸음직한 모습일지 모르고 이 작품 전체에 흐르는 음모와 배신, 불신과 반전 자체가 하나의 세익스피어가 만들었을지 모르는 브레이스거들이 언급하고 있는 미발표작품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세익스피어를 언급한 브레이스거들의 편지가 없었다면 이 작품은 평범한 스릴러 작품으로 평가받았을 것이다. 내용이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익스피어라는 인물로 인해 이 작품은 그 뻔한 구조에도 불구하고 빛나고 있다. 이것이 세익스피어가 지닌 문학적 가치이고 힘이 아닐까 생각된다. 세익스피어를 높이 평가하지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나지만 그가 차지하는 영문학적, 아니 세계 문학적, 문화 전반에 걸친 가치까지 평가 절하할 수는 없다. 그의 그림자가 너무 크고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작품은 세익스피어를 좋아하고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모두 읽고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더없이 좋은 선물일지 모르겠다. 누가 알겠는가? 영국 땅 어디쯤, 아니 유럽 어디쯤 세익스피어의 미발표작품이 진짜 숨어 발견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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