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아리아나 프랭클린 지음, 김양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나이가 들수록 편협해짐을 느낀다. 책을 보는데 이런 나의 편협함은 때론 방해가 되기도 한다. 그런 방해로 이 작품을 손에 잡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유대인, 영국의 중세시대, 십자군 원정 이런 것들이 거슬렸다. 하지만 그런 단순한 것들 때문에 이 작품을 읽지 않았더라면 후회할 뻔 했다.

처음 여자 의사, 그것도 법의관과 같은 의사라니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12세기에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살레르노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부터 찾아봤다. 백과사전에는 이런 말이 언급되어 있었다. ‘살레르노가 역사 속에서 지녔던 영향력은 주로 의학교 때문으로, 이곳에 아직도 남아 있는 유럽 최초의 의학교는 11, 12세기에 발전하여 유럽·아시아·북아프리카에서 많은 학생들이 모여들었던 곳이다.’ 그러니까 그곳에서 의학이 발전해서 영국까지 파견했을 수도 있음은 허구일지언정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또한 아델리아가 자신의 양어머니가 트로툴라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 트로툴라는 실존인물인지에 대한 논란은 있는 모양이지만 11세기에 존재했을 수도 있고 살레르노에서 여자도 의사도 받아들였을 수도 있음을 알려주는 책이 있어 아델리아라는 인물이 아주 허무맹랑하지만은 않음을 받아들이게 만들고 있다.

12세기 영국, 헨리 2세는 어린 아이의 살해 사건에 유대인이 연루되었다고 시민들이 유대인을 학살하자 그들을 성에 가두고 살인범을 찾기 위해 살레르노에 은밀히 사람을 요청한다. 이유는 헨리 2세가 기독교와 반목적인 상태였고 유대인들은 그에게 세금을 납부하는 큰 자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 이들이 바로 아델리아 일행이다. 수사관 격인 유대인 시몬과 아델리아를 호위하는 이슬람인 만수르, 그리고 죽음을 연구하는 의사인 여자 의사 아델리아로 구성된 실로 기묘한 일행이었다. 이들은 목적지로 향하다가 수도원장의 병을 낫게 하면서 수도원장의 도움을 받게 된다. 이미 사건은 연쇄 살인 사건, 그것도 아동을 상대로 한 추악한 사건으로 벌어지고 있었지만 모두 유대인 탓으로만 돌리고 있고 범인은 버젓이 날뛰고 있는 상태였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곳에서 그들은 범인에게 서서히 다가갔다.

중세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을 꼽으라고 하면 제일 먼저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꼽을 수 있다. 그 작품들이 아가사 크리스티식의 고전 추리소설이라고 한다면 아델리아 시리즈(2편도 나온다고 하니)는 중세를 배경으로 한 CSI, 또는 패트리셔 콘웰의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아마도 작가가 그것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쓰지 않았나 생각된다.

작가는 훌륭하게 12세기 영국에 과학을 접목시켜 독자에게 또 다른 기대되는 추리소설 시리즈를 만들어주었다. 어쩌면 당시 마녀라고 낙인찍혀 화형당한 이들 중에 이런 과학적 지식과 여자로서 하면 안 되는 의료행위나 탐정 같은 일을 잘해서 낙인찍힌 이들이 없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여자가 하면 안 되는 것이 많았던 시대에 아델리아 같은 인물이 있어 뒤에서 죽음을 파헤치고 사건을 해결하고 사람을 살리는 일을 했을지도 모른다. 남자로 위장을 했을지도 모르고 누군가의 뒤에 숨어서 했을 수도 있고 권력이 재능을 알아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했을 수도 있다.

역사도 편협한 시각으로 보지 않고 현실도 편협한 시각으로 대하지 않는다면 이 작품에서처럼 종교나 인종, 성별과 계급을 초월한 조금은 나은 세상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가 늘 그러했듯 인간은 늘 야만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12세기나 21세기나 천년의 차이가 나는데도 사람은 달라지지 않을 수 있는지 그게 더 미스터리다.

암튼 각설하고 좋은 작품이다. 쉽고 재미있게 읽히고 있다. 무엇보다 아델리아와 그 주변의 조연들, 울프까지도 살아 숨 쉬는 느낌을 전해주고 있다. 현대적인 면을 고스란히 중세로 옮겨갔지만 그것을 역사 안에서 부자연스럽지 않게 잘 조화를 이루게 만들었다는 점을 특히 높이 사고 싶다. 부디 이 아델리아 시리즈도 계속 출판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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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ㅁㅁㅁ 2008-01-27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끌리는 책이네요. 의학은 17c세기 자연과학 발전 중 제~일 도태된 학문이자 동떨어진 건데(200년씩이나)..12세기라..음../ 쨌든 보관함에 꾸욱 저장했어요 ^-^ 지름신 오심 주문해야겠다는 ^^;

물만두 2008-01-28 10:53   좋아요 0 | URL
생각보다 괜찮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