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한 초상
이갑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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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나이에 시인이었던 작가가 이 추리소설을 한편 남기고 짧은 마흔하나의 생을 마감했다. 처음 출판되었을 때는 이 작품을 접하지 못했다. 이제 추리소설의 붐이라면 붐인 시대가 와서 이 작품이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늦게나마 고인의 명복을 빈다.

작년, 그리고 올해 다시 나온 작품도 있었고 새로 나온 작품도 있었다. <헤르메스의 기둥>, <바람의 화원>, <미술관의 쥐>, 그리고 이 작품까지 저마다 색깔로 다르고 지향하는 관점과 소재도 다르다. 이렇게 비슷한 미술이라는 것으로 묶을 수 있는 작품들이 나와 줘서 고마울 뿐이다.

미술품과 오디오 광인 의사가 한 조각품에 눈길을 준다. 황금 해골을 표현한 작품인데 너무 정교해서 의사인 그는 어쩌면 진짜 사람의 두개골을 보고 조각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지만 그런 것도 조각가들 중 아주 세밀하게 표현을 하는 것이라고 하니 그리 생각한다. 그리고 만난 내연녀인 같은 정신과 의사에게서 한 환자에 대해 듣게 되고 그가 줬다는 존 수르만의 <로맨틱한 초상>이라는 음악을 들으며 이상한 예감을 한다.

경찰들은 엽기적인 연쇄 살인범을 쫓는 중이었다. 여자들만 골라 살해하고 메뚜기를 상징처럼 남기는. 그런 연쇄 살인범의 정신에 대해 알고자 경찰은 정신과 의사와 생물학 교수를 만난다.

아주 치밀하다고 보기에는 관점이 세 곳으로 분산이 되어 차라리 경찰과 연쇄 살인범, 아니면 정신과 의사와 연쇄 살인범, 아니면 연쇄 살인범을 끝까지 숨기고 경찰과 의사가 찾는 형식을 취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조금 더 길게 썼어야 했는데 하나하나의 마무리가 너무 성급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그가 쓴 시점을 생각해봤을 때, 그리고 지금도 이 정도의 작품이 나오지 않는 우리나라의 추리소설계를 봤을 때 말이다. 일찍 요절하지만 않았더라면 추리소설계에 좋은 작품을 남겼을 작가, 어떻게든 영향을 끼쳤을 거라는 김성종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안타까울 뿐이다.

작품을 읽으며 존 사루만의 <로맨틱한 초상>을 들었다. 내겐 어둡기 보다는 묵직하면서 평온한 느낌을 줬다. 재즈에 대해 아는 게 없어 그런지 죽음에 대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정신의학적인 관점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마음이 그 음악에 반영되는 것 같다. 악이라는 것도, 어떤 변명의 여지가 있다하더라도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다. 결국 로맨틱한 초상은 기원이었고 가망 없는 환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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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2007-12-11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의 죽음이 안타깝네요.

물만두 2007-12-11 11:30   좋아요 0 | URL
그렇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