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
고이케 마리코 지음, 오근영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모두 네 편의 조금 긴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는 고이케 마리코식의 일상에서의 비일상적 스릴러를 보여주고 있다. <이웃집 살인마>를 봐서 그런지 이 작품 속 주인공들의 문제가 단순함을 넘어서 너무 가까운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라 더욱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팽이 멈추기>에서 주인공은 남편의 정력적인 모습에서 쉬지 않고 돌아가는 팽이가 숨어 있어 그를 멈추지 못하게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남자들은 많다. 남성 호르몬이 과다 분비된 것 같은, 자신의 일에 자신감이 넘치고, 모든 일에 성공해야 직성이 풀리는 남자. 그런 남자에게는 어울리는 여자가 있게 마련일 텐데 동화를 쓰면서 조용하게 클래식을 듣고 꽃을 가꾸는 것이 가장 소중한 여자에게는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 아버지 같은 남자라서 좋아서 결혼을 했으면서 그것이 착각이었다고 느끼며 팽이 멈추기를 시도하는 여자... 맞지 않는 신발은 벗어버리는 것이 가장 손쉽고 좋은 일인데 왜 그러지 못했는지. 그런데 이런 여자들이 많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왜 일까?

<재앙을 부르는 개>는 심리적으로 그렇게 느낄 수도 있고 진짜 그런 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보면 왠지 정이 안가고 섬뜩한 느낌이 드는 물건이나 동물이 있다. 그것만 유독 싫은 경우가 누구에게나 한번쯤 있었을 것이다. 그런 것을 가까이 했을 때 불안한 심리는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그런 때 공교롭게도 안 좋은 일이 겹치면 그건 그쪽으로 마음이 갈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화풀이를 하고 싶은 심정인 주인공에게 개는 마침 그곳에 있었던 만만한 대상일 수도 있고 자기 안의 공포의 표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의 섬뜩함은 주인공의 불안을 극대화 시키고 독자들을 공포로 몰기에 충분했다.

<쓰르라미 동산의 여주인>은 한마디로 그 여자가 당신의 무엇에 반했을까 라고 되묻고 싶은 이야기다. 바닥까지 내려간 배우에게 미모의 여성과의 사귈 기회가 생긴다. 하지만 그녀는 재벌의 첩이었다. 사랑이라... 이런 말이 있다. 남자는 능력, 여자는 외모라고. 남자가 여자가 아름답지 않았다면,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면 남의 첩으로 살아가는 여자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자문해보면 답은 명백한 것을 우리는 자신에게는 이런 일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재앙은 남의 일이며 내가 하는 일은 사랑이고 남이 하는 일은 불륜이라고. 그러니 덫에 걸린 자가 살 길은 덫을 벗겨준 이에게 복종하는 일뿐. 참으로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작품이다.

<소문>은 이 단편집의 표제작인 만큼 독특하고 작품들 중 가장 일상에서 비일상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생각되는 주인공이 있다. 그녀는 간병인으로 나이 오십 줄이 가까이 되도록 살고 있다. 그러던 중 그녀가 간병하던 노부인이 사고사하는 일이 발생하고 그것 때문에 그녀가 노부인을 살해했다는 소문이 동네에 퍼진다. 하지만 여자는 꿋꿋하게 그들을 무시하며 지낸다. 그녀에게는 간병 일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돈이 있고 지금은 그동안 간병 일을 하던 할머니들의 빈집을 몰래 들어가 그들의 생활을 엿보는 취미생활 중이다. 가만히 놔두었더라면 그녀는 조용히 살게 되었을 것을 소문이 그녀를 부추긴 셈이 되어버렸다. 소문이란 이렇게 무섭다. 우리가 늘 겪는 소문들, 세치 혀가 얼마나 많은 재앙을 부르는 지 겪어봐야만 아는 건지 일상에서 그들은 그렇게 말만 하고 잊어버리면 그만이다. 어쩌면 그것이 제일 무서운 것 아닐까.

팽글팽글 돌아가며 한 사람의 정신을 빼놓은 팽이, 히죽이죽 비웃는 것 같이 느끼게 만들어 공포감을 자아낸 개, 쿵쾅쿵쾅 심장 뛰게 사랑으로 인생을 조종한 여자, 쑥덕쑥덕 입방아로 한 여자를 스타로 만들어 버린 말들... 이들은 모두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이다. 우리 안에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스릴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너무도 사소하고 너무도 어이없고 너무도 있을 것 같은 일들이라서. 고이케 마리코의 작품이 주는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스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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