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암흑관의 살인 1 ㅣ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는 나카무리 세이지라는 기이한 건축물만을 짓는 건축가가 지은 집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암흑관이 나오기 전까지 모두 여섯 권의 관 시리즈가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나카무라 세이지와 관련된 십각관, 환상화가라 불리는 후지누마 이세이가 관련된 수차관, 시계 만드는 회사와 관련된 시계관, 미로관, 인형관, 흑묘관까지 있는데 이 중 어떤 작품은 이 작품에도 약간씩 등장한다. 그러므로 관 시리즈를 아직 읽지 않은 독자라고 해도 무관하게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지금까지의 관 시리즈를 아우르고 일단락 짓는다는 의미에서도 의의가 있는 작품이다. 작가의 두 번째 관시리즈로 나아가기 위한 마무리와 새로운 시도가 잘 어울려서 지금까지 나온 관 시리즈 가운데 최고의 작품을 탄생시켰다는 느낌이 든다.
가와미나미가 우연히 알게 된 암흑관을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3권의 분량을 꽉 채우고 있다. 그리고 뒤로 갈수록 흥미진진해진다. 처음 읽으면서 내가 느낀 것은 위화감이었다. 어디라고 꼭 집을 수는 없는 그런 위화감... 그것이 읽는 동안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는데 아마도 눈썰미 좋은 독자라면 쉽게 그 위화감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우라도 가문 사람들의 기이함과 그들과 함께 우연히 만나 자리하게 된 시인의 이름과 같은 츄야라는 애칭으로 불리게 되는 젊은이가 화자로 등장하지만 화자의 시점은 탑에 올랐다가 지진으로 인해 떨어져 기억 상실에 걸린 가와미나미의 시점과 또 영화를 보듯 보이지 않는 사람의 시점으로 넘나들며 독자에게 읽는 재미와 스릴을 선사하고 있다. 물론 그 중심에는 달리아가 있지만.
사라져버린 것은
내 마음이었던가
사라져버린 것은
내 꿈이었던가
기억이란
이제 전혀 없다
길을 걸으면
현기증이 나누나
이 진짜 츄야라는 시인의 시는 이 작품을 관통하고 있다. 사라져버림이라는 기억상실을 경험한 세 사람, 가와미나미와 자신의 성만을 써보여 같은 글자라도 다르게 불리는 방식 때문에 에나미로 불리게 되고, 그 이전에 츄야라 불리는 젊은이가 우라도 겐지의 자전거에 치여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또 그 오래 전에 겐지 본인이 어린 시절 기억을 지금까지도 잃어버린 채 살고 있다. 그들이 잃어버린 것, 그들에게서 사라져버린 것은 기억일까? 아니면 무엇일까? 독자는 이들의 기억상실에서 함께 현기증 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안개와 호수를 물들이는 붉은색과 그리고 빛이 거의 들지 않는 어두운 암흑관 자체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음습함이 츄야를 통해, 기억을 잃고 누워있는 에나미를 통해 불안함과 섬뜩함, 뭔지 모를 일그러짐에 매달리게 만든다. 그것이 이 작품이 가진, 아니 암흑관이 가진 마력이 아닌가 생각된다. 누구도 감히 한번 발을 들인 자는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드는...
전작들과는 달리 작가는 긴 글을 거침없이 쓰고 있다. 단순한 본격추리를 지향하던 작가가 변하겠다는 의지인지 아니면 암흑관의 어둠을 쉽게 쓸 수 없었던 건지 잘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앞의 작품보다 더 좋은 작품을 볼 수 있어서 작가는 8년의 기간을 보상받았다고 생각되고 독자인 나는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마을의 외딴 호수의 섬에 지어진 암흑관,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접근하기 두려워하는 암흑관, 그들만의 폐쇄적인 모습, 그들이 말하는 달리아의 축복, 그 한복판의 거대한 어둠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암흑관에 발을 들여 놓는 자들에게 ‘달리아의 축복을’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나도.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본격 추리라는 틀 안에 잘 표현한 작품이다.
사실 본격이든 아니든 추리소설은 무조건 좋아하는 나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계관의 살인>은 내게 너무 뻔해서 별로였고 오히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별로라는 작품이 더 마음에 들었다. 뭐,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는 거겠지만 작가의 관 시리즈가 아주 대단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읽어볼 만은 한 작품들이지만. 하지만 이 작품은 그 관 시리즈들과는 다르다. 작가가 작품 스타일을 바꿨다고밖에 볼 수가 없다. 그래서 본격을 좋아하는 사람이든, 싫어하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이 작품은 좋아할만 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본격도 있고 스토리도 있으니까. 올 해가 가기 전에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