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와이브스 - 산파들
크리스 보잘리언 지음, 박미숙 옮김 / 금토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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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파라는 직업이 있다. 집에서 아이 낳기를 원하는 산모들을 위해 집에서 아이를 받아주는 옛날부터 있었던 직업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으면서도 어떤 사람은 사명감을 가지고 자긍심을 가지고 직업의식을 가지고 그 일을 한다. 이 작품은 그런 산파인 엄마의 이야기를 사춘기 소녀가 적은 회고록이다.

우선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산모가 아이를 집에서 낳기로 남편과 결정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계속 산파에게 산부인과 의사를 찾는 것처럼 검사를 받아서 신뢰를 쌓았다는 것이다. 그런 산모가 출산을 하려고 해서 산파와 그의 조수가 그 집에 갔다. 산모는 힘껏 아이를 낳기 위해 애를 썼지만 난산이어서 병원에 갈려고 했지만 날씨가 나빠 도저히 운전을 하고 병원에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힘꼇 출산을 하려 했지만 산모가 급기야 혼절을 하고 그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아무리 심폐소생술을 해도 산모의 맥박은 잡히지 않았다. 산모는 죽었다. 그렇다면 산모가 죽었다고 아직 작은 맥박이 뛰고 있는 아이를 나 몰라라 해야 하나? 이때 산파는 결심을 한다. 아기를 살리기 위해 제왕절개를 하자고. 이것이 잘못인가?

이것이 문제가 된다. 조수와 산모의 남편은 아내가 살아있었다고 한다. 죽지 않았는데 제왕절개를 해서 죽였다고 말한다. 사실인지도 모른다. 산파는 의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생명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하나의 생명을 살린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일까?

지금은 아무도 왕진 가방을 들고 왕진을 하지 않는다. 의사와 간호사가 왕진을 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산부인과에서도 가끔 산모나 아기가 죽는 경우를 본다. 하지만 전문적 지식을 갖춘 의사라는 직업이 그들의 실패를 인정해준다. 하지만 비전문가의 실패는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통계상으로 산파가 아이를 받던, 산부인과 의사가 아이를 받던 위험률은 비슷하다고 하는데도 말이다.

요즘은 다시 집에서 아이를 낳는 경우를 접한다. 산부인과도 산모들을 더욱 편안하게 분만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추세다. 세상은 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산파들은 의사들의 적일지 모른다. 하지만 산파들은 의사들과 함께 산모와 아이를 위해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들임을 서로 인정하고 이 작품에서처럼 산파들의 후견 의사가 된다면 병원이 멀리 있는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병원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일이 될 것이다. 물론 사이비 의료행위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는 사람은 분만하러 가는 택시 안에서 아이를 낳았다. 산모는 분만을 위해 입원을 하지 않는다. 진통이 있어야 병원을 찾는다. 그런 상황에서 돌발적 사건을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잘못보다 잘한 일을 알아주는 일이 그렇게 힘든 일인가보다. 산모와 아기 둘 다 살릴 수 있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둘 중 누군가를 선택해야 하거나 선택의 여지마저 없는 상황에서 하나의 생명이라도 살릴 수 있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산파이건 아니 건을 떠나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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